Rayuela : 팔방치기

- 훌리오 코르타사르 지음, vasistas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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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렇게 그들은 몽환적인 파리를 밤의 증표들에 이끌려, 부랑자clochard의 문장에서 태어난 이정표들을 준수하며, 검은 거리 깊숙이 빛을 밝힌 다락으로부터, 믿음이 가는 작은 광장들에서 멈칫거리며, 벤치에 입을 맞추거나 팔방치기를 구경하고자, 아이들이 비석으로 의식을 치루고 한 발로 ‘하늘’에 뛰어드는 모습을 보기 위해 걸었다. 마가는 몬테비데오에 친했던 여자아이들과 자신의 유년에 대해, 그리고 레데스마라는 사람과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올리베이라는 전혀 들을 마음이 없었지만, 그래도 조금은 관심을 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해 귀를 기울였다. 몬테비데오가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별반 다를 게 없었을뿐더러 제 딴에는 어정쩡한 헤어짐들을 공고히 다질 시간이 필요했기에(트레블러 그 놈팽이 새끼는 뭘 하고 있을까, 떠날 때부터 무슨 어처구니없는 사건에 휘말렸던 걸까? 가엾은 멍청이 게크렙텐은 어떻게 지내고 시내의 카페들은 여전할까), 올리베이라는 그녀의 말은 귓등으로 들으며 나뭇가지로 자갈에다가 그림을 그렸는데, 마가는 그동안에도 쳄페와 그라시엘라가 어째서 좋은 사람인지, 루시아나가 배에 마중 나오지 않아 얼마나 슬펐는지, 그리고 루시아나는 스놉인데 누가 됐든 그런 꼴은 봐 줄 수가 없다며 조잘댔다.

     “뭘 두고 스놉이라는 거야?” 조금은 더 마음이 동하여 올리베이라가 물었다.

     “그러니까,” 스스로도 멍청한 소리를 하려는 걸 모르진 않았는지 마가는 고개를 수그리며 말했다. “내가 여기 삼등석을 타고 왔잖아, 근데 이등석을 탔다면 루시아나도 마중을 나오지 않았겠냐는 거지.”

     “아주 난생 처음 들어보는 최고의 정의네.” 올리베이라가 말했다.

     “그리고 로카마두르도 있었어.” 마가가 말했다.

     그렇게 올리베이라는 로카마두르의 존재를 알게 되었는데, 몬테비데오에서는 그는 그냥 점잖게 카를로스 프란시스코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한다. 마가는 로마카두르의 창세기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하기에는 그닥 어울리지 않았고, 다만 낙태를 거부했다가 이제 와서는 후회중이라 말했다.

     “그래도 정말로 후회하지는 건 아니야,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하지. 이렌 아주머니가 많이 챙겨 주기도 하고, 어떻게든 노래 공부를 해야지 뭐.”

     마가는 자신이 어째서 파리에 왔는지를 자세히 알지 못했으며, 올리베이라는 그녀가 만약 행선지나 여행사 및 비자 발급에 문제가 있었다면, 지금쯤 싱가포르나 케이프타운에 있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녀에게는 오직, 자신이 몬테비오로부터 벗어났으며 자신이 점잖게 ‘삶’이라 부르는 것을 직면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중요하였다. 파리에 있어 정말로 좋은 게 뭐냐면, 그녀가 프랑스어를 제법 (피트만 보습학원에서 배운 수준보다 more) 할 줄 알았으며, 최고의 그림과 최고의 영화들, 가장 혁혁한 형태의 Kultur를 볼 기회가 많다는 것이었다. 올리베이라는 그런 모습에 뭉클해서는, (비록 왜인지는 몰라도 로카마두르 관해서는 조금 충격적이기는 했으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알던 재기 넘치는 여자들을 떠올려 보았는데, 그들의 경우 아무리 전 지구적 차원에서 형이상학적 고민을 한들 마르-델-플라타 너머로 떠나기란 불가능했다. 그런데 이 왈가닥은 심지어 아들도 품에 안고서, 3등석에 몸을 싣고, 지갑에는 땡전 한 푼도 없이 노래 공부를 한답시고 파리에 왔다. 그리고 그걸로는 부족했는지 자신에게 보는 법과 바라보는 법에 대한 가르침을 주었다. 이때의 가르침이란 그녀 스스로는 짐작도 못했을 테지만, 어슴푸레한 초록색 불빛 말곤 아무것도 없는 현관을 보려고 갑자기 걸음을 멈춘다던지, 건물 관리인 아주머니의 노여움을 피해 슬그머니 빠져나가고, 낡은 조각상이나 덩굴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넓은 안뜰에 나타나 그저 닳아빠진 둥근 자갈 타일을, 벽을 뒤덮은 푸른 이끼를, 무슨 벽시계라도 되는 양 구석에 그늘로 자리잡은 노인을 바라보며, 그리고 고양이들에게, 언제나 필연적으로 희고 검고 얼룩지고 회색빛을 띠는 야옹이 나비 miaumiau kitten kat chat cat gatto, 시간과 미지근한 포석의 주인들에게, 배를 간지럽히며 멍청함과 신비로 점철된 말을 건네는 그녀를 변치 않고 받아주는 그녀의 친구들에게, 언제나 정해진 시간에 와서 조언과 주의를 주는 식이었다. 마가와 함께 걷다 보면 올리베이라는 문득 이건 좀 이상하지 않나 싶을 때가 있었지만, 그렇다 해서 짜증을 부리지는 않았던 게, 그녀가 저지르는 일이란 대개 웨이터에게 한 소리 듣고자 맥주잔을 뒤엎는다든지 탁자 밑으로 다리를 거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마가의 특정 방식에 항상 짜증이 났던 건 사실인데, 이를테면 정해진 일을 정해진 대로 하지 않는다거나, 계산서에 앞자리 숫자들에는 눈길을 주지 않고서 대신에 Modesto 3에 늘어선 줄에 넋을 잃는다든지, 아니면 길 한복판에(검은색 르노 자동차가 2미터 앞에서 브레이크를 밟더니 머리를 내밀고는 피카르디아 억양으로 씨발씨발거린다), 거리 한가운데 서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멀리 팡테옹을 바라보고는 인도에서 바라보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식으로 그 외에도 비슷한 일을 많이 저질렀는데, 그럼에도 그는 그녀와의 시간이 행복하였다.

     페리코와 로날드하고는 이미 아는 사이였다. 마가에게 에티엔을 소개받았고, 에티엔이 그들에게 그레고로비우스를 소개해 주었다. 구사회는 생-제르맹-데-프레에서 지새던 밤들 가운데 결성되었다. 모두 얼마 안 있어 마가를 마치 피치 못할 자연적 현존으로 받아들였는데, 물론 그렇다 해도 자신들이 나누는 이야기의 대부분을 그녀에게 설명해줘야 했으며, 그녀가 포크를 절도 있게 사용할 줄 몰라 공기 중으로 감자튀김을 날리면 그것이 곧잘 다른 탁자에 앉은 사람들의 머리로 쇄도하여 사과를 하기 일쑤였고, 자각이라는 게 있냐며 그녀에게 타박을 주는 등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다. 구사회에서 마가는 매우 골칫거리의 존재로, 올리베이라는 점차 그녀가 모임의 사람들을 각자 따로 만나고 싶어하는 것을, 에티엔이나 밥스와 함께 밖에 나간다든지, 아닌 척 하면서도 정작 그들을 자기 세계로 끌어들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눈치챘는데, 어차피 다들 버스 노선이나 일상의 궤도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라 마지않는 사람들이었기에, 회원들은 틈만 나면 마가를 질타하면서도 저마다 이런 저런 방식으로 그녀에게 감사를 느꼈다. 에티엔은 우체통이나 개마냥 자기 자신을 확신하는 사람이었는데 마가가 그의 그림 앞에 서서 생각나는 대로 무언가 내던지면 낯빛을 파랗게 질려 했고, 페리코 로메로는 결국에 여자라기엔-마가가-보통이-아니다를 받아들이고야 말았다. 몇 주고 몇 달이고 (날짜를 세기란 미래에 대한 에르고ergo 없이 마냥 해복한 올리베이라에게 어려운 일이었다) 그들은 여러 사물들을 바라보며, 일어나야 할 일들을 일어나게 내버려두며, 서로 좋아하고 서로 다투며, 그리고 신문에서 다루는 기사나 가족으로의 의무를 외면하고서, 어떤 형태로든 재정적이고 도덕적인 부담을 주는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난 채로, 파리 전역을 가로지르며 걷고 또 걸었다.

     똑, 똑.

     “이제 그만 정신 좀 차리자고.” 이따금씩 올리베이라는 말했다.

     “왜 그래야 하는데.” 퐁-뇌프로부터 오는 거룻배들peniches을 바라보며 마가가 말을 이었다. “똑, 똑, 머리에 뭐 새라도 들었나봐. 똑, 똑, 그래서 항상 당신을 쪼아대는 거야, 아르헨티나 음식을 달라는 거라고. 똑, 똑.”

     “알았으니 그만해.” 올리베이라가 투덜거렸다. “나를 로카마두르로 착각하지 말라고. 이러다가는 또 식료품점이나 관리 아주머니 앞에서 글리글리코로 말하게 되고, 그럼 아주 사단이 날 거야. 저기 흑인 여자애 꽁무니를 쫓는 녀석 좀 봐.”

     “나 저 여자애 알아, 프로방스 길 커피숍에서 일해. 근데 쟤는 여자를 좋아하는데, 참 불쌍하네, 쓸데없는 일이나 하고 말야.”

     “자기한테도 수작을 부렸어?

     “당연하지. 하지만 어쨌거나 우린 친구가 됐어, 내가 루즈도 줬고 나는 책을 한 권 선물 받았는데, 작가가 누구더라, 레테, 아니... 잠깐만, 레티...”

     “그래, 그건 그렇다 치자고. 정말 같이 안 잔 거 맞아? 당신이라면 관심 가졌을 법도 한데.”

     “오라시오, 자긴 남자란 자 보긴 했고?”

     “그럼. 다 경험 아니겠어, 알잖아.”

     마가는 눈을 흘기면서 그가 자신을 놀리고 있다고, 이게 다 머릿속에서 똑 똑 거리는 새 때문에, 아르헨티나 음식을 달라는 조르는 새 때문에 뿔이 나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는 올리베이라에게 몸을 날려 마침 생-쉴피스 길을 지나가던 부부를 놀라게 하는 일이 발생했는데, 마가는 올리베이라의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웃어댔고 올리베이라는 그녀의 두 팔을 억눌렀는데, 그러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는 그들을 보면서 남편 쪽은 어렵사리 미소를 지었고, 부인은 그들의 행실에 경악을 마지않았다.

     “당신 말이 맞아,” 올리비에가 결국에 시인했다. “나도 참 구제불능이군. 결국 그렇게 잘 자 놓고서도 정신 차리자는 말이나 하고.”

둘은 어느 진열창 앞에서 걸음을 멈춰 책들의 제목을 훑었다. 마가는 책의 색깔이나 형태들을 따라가며 질문을 던졌다. 올리베이라는 플로베르의 위상에 대해, 몽테스키외가, 레몽 라디게가 어떤 사람인지, 테오필 고티에가 언제 적 사람인지를 알려주어야 했다. 마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진열창에다가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렸다. “머릿속에 새가 한 마리 있어 아르헨티나 음식을 먹고 싶대요”, 올리베이라가 되뇌며 생각에 잠겼다. “내 신세 하고는, madre mía.”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는 걸 모르겠어?” 결국 그가 말했다. “자기야, 당신은 길에서 교양을 쌓으려 하는데, 그건 가능하지가 않아. 그러려면 리더스다이제스트Reader’s Digest나 구독하라고.”

     “싫어, 그런 쓰레기를 어떻게 읽어.”

     머릿속 새 한 마리, 올리베이라는 되뇌었다. 하지만 이는 그녀를 향하는 말이 아니었고, 그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그녀의 머릿속엔 무엇이 있지? 공기든 옥수수 가루든 간에 무언가 수용능력이 떨어지는 것이리라. 그녀의 중심은 머릿속에 있지 않았다.

     “그녀는 두 눈을 감고 과녁을 명중시킨다”, 올리베이라는 생각했다. “바로 발사의 선-체계다. 하지만 체계라는 게 무엇인지를 모르기에 마가는 그저 과녁을 맞출 따름이다. 반대로 나는... 똑 똑. 뭐 이런 식으로 돌아간다.”

     마가가 선-철학에 대해 질문을 하였을 때(이는 구사회에서 가능한 일로, 모임에서는 동경의 대상이나 아득한 지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그것들은 까마득하기에 근본적인 것들로, 동전의 뒷면으로, 언제나 보는 달의 뒷면으로 여겨졌다), 그레고로비우스는 애써 그녀에게 형이상학의 기초를 설명하려 했으나, 올리베이라는 페르노를 홀짝이며 그런 광경을 보고 즐거워했다. 마가에게 무언가를 설명하려 든다는 것은 무분별한 짓이었다. 포코니에가 맞았는데, 그녀 같은 사람들에게 신비란 설명과 함께 태동되었다. 마가는 내재성과 초월성에 관한 이야기를 듣더니 예쁜 눈을 반짝이며 그레고로비우스의 형이상학을 잘라먹었다. 결국 그녀는 자기가 선을 이해했다고 납득하기에 이르렀으며, 힘이 들었는지 숨을 내리쉬었다. 그들 가운데 오직 올리베이라만이 깨달을 수 있던 사실이 있는데, 결국 그들이 변증법으로 구하고자 하는 시간 밖 거대한 테라스란, 매 순간 마가가 모습을 비추는 장소에 불과하였다.

     “멍청한 말들은 넘겨버리지 그래?” 그가 충고했다. “쓸 필요도 없는 안경을 굳이 왜 쓰려고 하는지.”

     마가는 조금 불신하는 눈치였다. 그녀는 쉬지 않고 장장 세 시간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올리베이라와 에티엔에게 끔찍하리만치 감탄하였다. 그녀는 에티엔과 올리베이라를 두르는 백묵의 구체 속으로 들어가, 어째서 문학에서는 미결정 원칙이 그토록 중요한지, 어째서 그들이 그토록 언급하고 감탄해 마지않는 모렐리가 자신의 책을 수정구로 만들어, 소멸하는 환시 속에서, 미시우주와 거시우주를 하나로 합하고자 하는지 알고 싶었다.

     “너한텐 설명이 안돼.” 에티엔이 말했다. “이건 메카노 7인데 넌 끽해야 2에 머무르고 있거든.”

     이에 마가는 슬픔에 잠겼고, 길가에서 나뭇잎을 하나 줍더니 잠깐 그것과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나뭇잎을 손바닥에 올려렸다 눕혔다 돌렸다 빗겨주더니 결국은 잎몸을 벗겨 잎맥을 드러내었는데, 그녀의 피부를 바탕으로 그것은 복잡다단한 초록색 환영이 되었다. 에티엔은 갑자기 잎을 빼앗아서는 빛에 비추어보았다. 이런 일들이 있기에 그들은 그토록 마가에게 감탄하였고 그녀에게 거칠게 굴었던 것을 조금은 부끄러워했는데, 그러면 마가는 이 때다 싶어 다시 맥주를 시키고 또 감자튀김도 좀 주문할 수 있는지를 묻곤 하였다.

 

(-71장)

Posted by vasist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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