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uela : 팔방치기

- 훌리오 코르타사르 지음, vasistas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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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틀어박혀 있던 구석에서 나와, 발을 어디에 둘지 정확히 고르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양 꼼꼼히 살피고서, 바닥 한 쪽으로 발을 내딛고, 그런 다음 그는 좀 전과 마찬가지로 조심조심 다른 쪽 발을 내밀어서는, 로널드와 밥스로부터 이 미터 떨어진 곳에 몸을 웅크려 마침내 완벽하게 바닥에 자리를 다잡았다.

    “비가 오지 말입니다.” 다락 채광창을 가리키며 웡이 말했다. 올리베이라는 천천히 손으로 담배 연기를 풀어헤치고서는 우정 어린 마음으로 웡을 바라보았다.

    “해수면 쪽에 누구 하나 않기로 하니 한결 낫네요, 더는 신발이나 무릎이 사방팔방 보이지 않으니. 이보쇼che, 잔은 어디 두었습니까?”

    “여기” 웡이 말했다. 

    그의 잔이 손닿는 곳에서 가득 찬 상태로 서서히 드러났다. 둘은 술을 음미하며 마셨고 로널드가 존 콜트레인[각주:1]을 틀어주었는데, 그에 페리코가 성을 내었다. 이어서 파리 메렝게 시기의 시드니 베세[각주:2]가 울려 퍼졌는데, 조금은 서반어권 고정관념들을 비웃는 모양이었다.

    “고문에 관한 책을 준비 중이라는데 사실입니까?”

    “아아, 정확히 그런 건 아니고요.” 웡이 말했다.

    “그러면 뭐랍니까?”

    “중국에서는 예술에 대해 다른 개념을 갖고 있지요.”

    “그건 압니다, 다들 미라보의 중국인[각주:3]을 읽었으니까. 1920년대인가 언제인가 베이징에서 찍은 고문 사진을 갖고 계시다던데 사실입니까?”

    “아아, 그런 건 아니고” 웡이 웃으며 말했다. “사진이 선명하지가 못해서요, 굳이 보여드리기엔.”

    “항상 가장 끔찍한 걸 지갑에 넣고 다닌다던데, 사실인가요?”

    “아아, 그런 건 아닙니다” 웡이 말했다.

    “그리고 그걸 카페에서 몇몇 여자에게 보여줬다던데?”

    “하도 보채서 말이지요” 웡이 말했다. “조금도 이해를 사지 못했다는 게 가장 끔찍한 일이지만요.” “한번 봅시다” 올리베이라가 손을 뻗으며 말했다.

    웡은 미소를 인으며 상대의 손을 바라보았다. 계속 보채기에는 올리베이라가 너무도 취한 상태였다. 그는 다시 보드카를 한차례 들이키고서 자세를 바꿨다. 넷으로 접힌 종이 한 장이 손에 쥐여졌다. 웡이 있던 자리에는, 체서 고양이의 미소와 함께 어떤 인사랄 것이 연기에 휩싸였다. 기둥은 길이가 일에서 이 미터쯤 되었으며, 총 여덟 개 있었지만 그것은 넷 씩 연달은 두 장의 사진에, 그러니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같은 기둥이 반복된 것으로, 초점은 조금씩 달라도 동일한 기둥이었으며, 다만 한 가지, 기둥에 묶인 죄수나 출석한 자들의 얼굴(왼쪽에는 여자도 하나 있었다)과 사형집행자의 위치가 바뀌었는데, 집행자는 사진사의 편의를 위해 언제나 조금 왼쪽에 위치했고, 무슨 북미인지 덴마크인지의 모를 민족학자로 사진사의 실력은 출중했으나 꽤나 저질인 20년대 코닥 즉석 사진이기에, 결국 두 번째의, 임의로 뽑아 든 칼에 잘린 오른 쪽 귀 말고는 나머지 나체가 뚜렷이 보이는 사진을 제외한다면, 그 외 다른 사진들은 몸을 덮는 피라든지 필름이나 현상의 조악함으로 인해 실망스럽기가 그지없었고, 특히 죄수라고는 그저 거무죽죽한 덩어리에 벌어진 입이나 희멀건 팔 한 쪽만이 두드러지는 네 번째 사진을 시작으로, 마지막 세 장의 경우, 집행자가 취하는 자세만 다를 뿐 실제 마찬가지인 사진으로, 개중 여섯 번째에서 집행자는 포대에서 칼을 하나 빼어내고자 몸을 수그린 상태였으며(하지만 이는 눈속임인 것이, 짧은 것에서 시작해서 더 깊숙이 밀기 위해서라면...), 한편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문을 받은 사람이 아직 살아있음을 알 수 있는데, 왜 그런가 하면 밧줄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한 쪽 발이 바깥으로 꺾여 있고, 머리는 뒤로 젖혀진 채, 입이 여전히 벌어져 있기 때문이며, 그 외에도 바닥에 충분히 깔린 톱밥을 보니 아마도 피 웅덩이가 더는 늘지 않고 기둥을 중심으로 거의 완벽히 타원을 그리는 것에 대한 중국식 친절로 말미암은 듯하다. “일곱 번째가 결정적이지요”, 웡의 목소리가 보드카와 담배 연기 한참 뒤쪽에서부터 흘러나왔는데, 주의를 기울여 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두 번째와 세 번째 사진 사이에) 깊이 도려낸 유두륜-으로부터 피가 넘쳐흐르고, 하지만 그럼에도 일곱 째 사진에서 명을 앗아간 칼을 확인 할 수 있는 바, 그것은 바깥으로 살짝 열린 대퇴부의 형태가 변하는 듯하기에, 또 사진을 바로 얼굴 가까이 가져다 댈 경우 기실 그 변화는 넓적다리 쪽가 아니라 사타구니에서 일어난 것을 알 수 있기에, 첫 번째 사진 속 지저분한 얼룩이 있던 자리에는 그것을 대신하여 무언가 넘쳐흐른 구멍처럼, 겁탈 당한 여자아이의 성기 같은 것이 있고, 그곳으로부터 피가 실처럼 흘러나와 넓적다리로 미끄러져 내리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웡이 여덟 번째 사진을 대단찮게 생각한 것도 일리가 있음이, 이미 죄수가 산 상태일 수도 없어니와 누가 됐던 간에 그런 식으로 머리를 옆으로 떨굴 리도 없기 때문이었다. “제가 아는 바로라면 전체 작업에 걸린 시간은 한 시간 반이었다고 합니다”, 아주 격식을 차린 웡의 관찰이었다. 종이는 넷으로 접혔고, 검은 가죽지갑은 카이만 악어처럼 연기 속에서 입을 벌려 대상을 집어삼키려 들었다. “물론 베이징이 더는 예전 같지 않지요. 너무도 원시적인 것을 보여드려 죄송하기는 하지만, 다른 문서를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도 없을뿐더러 올바로 이끌려면 설명이 필요하기에...” 그의 목소리는 너무도 요원한 나머지 앞서 본 사진들의 연장선이라도 되는 듯한, 격식을 차린 학자의 주해라도 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위로 혹은 그 아래로, 빅 빌 브룬지[각주:4]의 시편 같은 See See rider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였고, 언제나 그러하듯 모든 것이 양립할 수 없는 차원들로부터 다시 하나로, 하나의 그로테스크로, 보트카와 칸트식 범주의 도움에 힘입어, 현실의 너무도 갑작스러운 응고작용에 대항할 진정제의 도움으로, 하나의 콜라주로 합치하였다. 오오, 거의 언제나 그러하듯 두 눈을 감으리니, 펼쳐 놓은 한 벌의 카드 사이 조심스레 고른 밤의 목화솜 같은 세상으로 돌아가리니. See, see, rider, 빅 빌이, 그 또 다른 죽은 자가, see what you have done 노래를 불렀다.

 

(-114장)

  1. 존 콜트레인(1926-1967) : 미국의 재즈색소폰 연주가이자 작곡가. 디지 길레스피에서도 활동한 바 있다. [본문으로]
  2. 시드니 베세(1897-1959) : 미국의 클라리넷 및 섹소폰 연주자로 루이 암스트롱, 젤리 롤 모턴과 더불어 뉴올리언스 고전재즈를 이끌었다. [본문으로]
  3. 옥타보 미르보(1848-1917) : 프랑스의 소설가로 드레퓌스 사건 때 중국을 배경으로 『단죄의 정원』이라는 소설을 썼다. [본문으로]
  4. 빅 빌 브룬지(1893-1958) : 미국의 블루스 기타리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 [본문으로]
Posted by vasist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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