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03

떠들기 2020. 5. 23. 22:58

아직 머리가 아파 걸었다. 북악산을 경사해 안국역을 지나 종로에 달했다. 커피숍에서 테스트 씨의 독일어와 스페인어 번역을 분석하고 동아일보를 지나 - 동아일보에는 100주년 기념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 옛 러시아 영사관이 있던 터로 올라 -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공사중이었다 - 정동길로 내려가려는데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조용했던 나의 공원에선 훌륭하신 서울 시장 덕분인지 작은 결혼식이 진행중이었다. 불쾌함과 함께 정동길을 걸어 대한문 쪽으로 빠져 나가려는데 백인 남성이 노래를 불으며 돈을 구걸했고, 지나칠 때 귀로 un coup de soleil라는 구절이 정말이지 한 줄기 빛처럼 들려왔다. 그리고 조금 더 걸어가니 대한문으로 나오기에 앞서 어떤 남자가 양복차림으로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세상 잃은 자세로 담벽을 보고 앉아 있었다. 앞에는 빈 막걸리 병 몇몇과 웃고 있는 노무현의 사진이 있었다. 참 대단한 대한민국이나 하며 길을 건너 오향족발에 가서 밥을 먹었다. 가게를 나와 402번을 타고 경희네 서점에 갔다. 서점엔 책들이 평소보다 가득했고, 경희는 내가 본 중에 제일 자애로울 만큼 보기 좋아보였다. 늘어난 책들을 구경하다 다쿠보쿠의 단카집이 눈에 들어와서 조금 펼쳐보다가 닫고 도련님의 시대 2부를 샀다. 최근 이태원 코로나 확진자 발생으로 손님이 없었다고 해서 다시 3부도 꺼내 결재하고 잡담을 하고 헤어져 처음 보는 휘황찬란한 지하도로를 지나 143번을 타고 동네로 돌아왔다. 잠시 동네 친구를 만나 어정대다가 마을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려 집으로 향했다. 예술가이기를 뽐내는 옆집의 진열장이나 다름 없는 창문으로 늘어선 와인병들과 한 번도 그림 그리는 것을 본 적 없는 집 한 가운데의 이젤이 조명을 받고 있었다. 집에서 도련님 시대를 읽다 문득 문자를 보니 경희에게서 문자가 왔다. 생면부지인 사람의 부고를 전해들었고, 거의 동시에 내가 읽던 책에서도 다쿠보쿠의 죽음을 알렸다. 책의 소개된 그의 단카가, 아주 오랜만에 하나의 문장으로 내게 다가왔다 : 모든 피부가 귀에 있어, 조용히 잠든 거리의 무거운 발소리.

Posted by vasist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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