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김정환의 시집 <<해방서시>>가 있어서 읽었다. 내가 그를 읽었떤 것은 대학에 들어간 후 헌책방에서 구한 <<좋은 꽃>>부터였고, <이 것들이 인간 죽음의 간섭>이라는 아름다운 시가 실린 <<거푸집 연주>>까지 챙겨 읽었다. 만취한 그의 모습을 얼핏 본 것이 전부였지만 나는 그를 오랫동안 좋아했다. 남들의 시선을 아랑곳않는 번역작업들도 그 결과물과 상관없이 내게는 좋았고 시집들마다 작위적이지 않으면서도 매번 자신을 변주하며 변화하는 모습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괜히 정이 갔다. <<해방서시>>는 그의 첫 시집 <<지울 수 없는 노래>>와 <<황색 예수전>>, <<황색 예수전2>>의 시들과 또 시선에 어울릴 다른 시편들이 수록된 책인데, 그가 지나고 내가 겪지 못한 시기들과 그때의 태도들을 확인할 수 있어 즐거웠다. 시도 사람도 낡고 늙어가고 계속해서 마모하고 변모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좋아하던 그의 모습들을 확인할 수 있어 즐겁다. 후기에서 그는 마지막으로 "역사는 진보할 것이다, 그 진보를 위해 나는 쓰고 또 쓸 것이다, 쓸 필요가 없거나, 쓸 수가 없을 때까지."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가 지금도 역사의 진보를 믿는지, 혹은 여전히 쓸 필요를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시를 쓰고 시를 번역하고 있다. 그의 작업은 뛰어남을 구하지 않는다. 오래 살아 취해 돌아다니는 그의 모습을 또 우연히 봤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