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번째 수직의 시』에서

22
연기가 우리의 영상이다.
우리는 연소되어 사라지는 무언가의 잔여물이다
가까스로 보이는 점진적 소멸이다
시간이라는 가정 속에서 해체되는, 
다른 어떤 때에 형성되었을지도 모르는,
지켜지지 않은 약속이다.

타오르는 나선무늬에도,
여기 잊혀진 섬의
혹독한 겨울은 누그러지지 않으니,
언젠가 섬 또한 연기로 변해야 하리라.

우리 어찌 영상에 매료되지 않겠는가,
그 발전적 실패에,
그 비실체적 실체에,
그 낯모르는 열기에,
수은이 칠해지지 않은
그 유일무이한 가능의 거울에.

혹여 우리 이 광기어린 무질서로부터 벗어날 경우,
연기는 다시금 또 다른 불을 지필 것이다.

허나 그때 더는 연기가 남아있지는 않으리니.

Posted by vasist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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