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제가 오래 읽고 작업한 작가들의 작품을 그와 상응하는 한국 작가의 작품과 함께 읽는 모임입니다.

저는 평소 문학을 제 작업 외에 딱히 에세이나 공개 장소에서 나불거리며 소모하지 않기에, 저의 문학이 다른 사람들의 문학과 어떻게 다른 지도 조금은 보여드릴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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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편으로부터 › 제3회 - 망년과 송년, 그리고 희망

연말연시는 잘들 보내고 계신지요. 저는 올 한 해 많은 친구들과 함께 있었고, 살면서 처음으로 여러 사람들 속에서 불화 없이 마냥 즐거웠습니다. 그럼에도 습관 탓인지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언젠가부터 망년회가 송년회로 바뀌었는데,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96년도에 이미 ’퇴폐적인 뜻이 담긴 망년회란 일본식 말을 쓸 것이 아니라 뜻도 맞고 어울리는 송년회’라고 권장을 하고 있습니다.
https://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19961207000900

어째서 퇴폐적인지는 잘 이해가 안 가지만, 누군가에겐 한 해를 잊어야 할 망년회여도 좋고, 누군가에겐 한 해를 보낼 송년회여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저는 오래 이어진 속시끄러움을 마침내 잊어버릴 때가 된 것 같아, 좋은 친구들과 망년회 보냈습니다.

새해라는 것에 취해 한국에서는 보신각 종을 울리고, 독일이나 중국에서는 거리거리마다 폭죽을 터뜨리고(코로나 때에는 어땠을지 모르겠습니다), 에펠탑 밑에서 모르는 사람과 부둥켜 않고, 또 누구는 작심삼일이 되기 십상인 새로운 목표나 계획따위를 세워봅니다.

이러한 수작에 원체 관심이 없던 제게 새해는 그저 단어에 지나지 않았는데, 문학을 공부하고 스무 살 즈음부터 지금까지도 한 명의 작가, 루쉰을 떠올리곤 합니다.

일본에서 유학을 하며 동양적 근대에 대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했던 루쉰은 1925년 1월1일에 ’희망’이라는 시를 발표합니다.


희망
루쉰 지음, 최성웅 옮김

내 마음 유달리 쓸쓸하다.
그럼에도 편안한 마음이다. 애증愛憎도 애락哀樂도 없고, 색도 소리도 없다.
아마도 나이가 들었음이라. 내 머리가 벌써 반백半白인 것은 분명 사실이 아니던가, 손이 떨리는 것 또한 분명 사실이 아니던가. 내 넋의 손도 떨릴 것이며, 내 넋의 머리도 반백임이 틀림없다.
물론 이는 여러 해 전부터의 일이다.
내 마음도 피비린내 나는 노랫소리로 가득 차 있을 때 있었다. 피와 쇠, 불꽃과 독, 회복과 복수로. 그러나 순간 이 모든 것들은 텅 비고야 말았다. 덧없는, 자기기만적인 희망으로 메워보려고도 하였다. 희망, 희망, 이 희망을 방패삼아 덧없이 밀어닥치는 어두운 밤을 거부하려 하였다. 비록 방패 안쪽 또한 텅 빈 어두운 밤일뿐일지라도. 나의 청춘은, 그렇게, 서서히, 소모될 따름이었다.
내 청춘이 지나갔음은 진작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몸 바깥의 청춘만은 남아있으리라 믿었다. — 별, 달빛, 빈사瀕死의 나비, 어둠 속의 꽃, 수리부엉이의 불길한 소리, 피를 토하는 두견새, 웃음의 유현幽玄함, 사랑의 난무…… 슬프고, 또 덧없는 청춘이라 할지라도 청춘은 역시 청춘이다.
허나 지금은 어이하여 이다지 쓸쓸한가? 설마 몸 밖의 청춘도 모두 다 사라지고 세상의 청년들이 모두 늙어 버린 탓은 아닐는지?
나는 혼자서 이 텅 빈 어두운 밤에 도전할 수밖에 없다. 나는 희망의 방패를 버리고, 페퇴피 샨도르(1823-49)의 '희망'의 노래에 귀를 기울인다.
          희망이란 무엇인가? 창녀여.
          누구에게나 웃음을 팔고 모든 것을 주며,
          그대가 많은 보물-그대의 청춘을 잃었을 때
          그대를 버린다.
이 위대한 서정시인, 헝가리의 애국자가 조국을 위하여 코사크병의 창 끝에 죽은 지 어느덧 75년이 지났다. 죽음은 슬픈 것이지만, 더욱 슬픈 것은 그의 시가 아직도 죽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애처로운 인생이여! 저 용감무쌍한 페퇴피조차도 마침내 어두운 밤 앞에 발을 멈추고 망망한 동방을 돌아본다. 그는 말한다.—
절망은 허망虛妄이다. 희망이 그러함과 같이.
만약 내가 불명불암不明不暗의 '허망' 속에 목숨을 부지해 갈 수 있다면, 저 지나간 슬프고도 덧없는 청춘을, 비록 내 몸 밖에 있다 할지라도, 나는 찾아내리라. 내 몸 밖의 청춘이 한번 소멸하면, 내 몸 안의 황혼도 동시에 시들 터이니.
그러나 지금은 별도 달빛도 없고, 빈사의 나비도 없으며 웃음의 유현함도 사랑의 난무도 없다. 청년들은 평화스럽다.
나는 혼자서 이 텅 빈 어두운 밤에 도전할 수밖에 없다. 비록 내 몸 밖의 청춘을 찾아내지 못한다 해도, 내 몸 안의 황혼만은 떨쳐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허나, 어두운 밤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은 별도 없고, 달빛도 없고, 웃음의 유현함도 사랑의 난무도 없다. 청년들은 평화롭다. 그리고 내 앞에 참된 어두운 밤조차도 없는 것이다.
절망은 허망이다. 희망이 그러함과 같이!

1925년 1월 1일

「희망」이 수록된 루쉰 유일의 산문시집 『들풀』



조금 이야기를 돌려보자면, 한국에서 잠깐 대학에 들어가 시를 읽기 시작하고 2년 정도 지났을 때, 저는당시 한국에서 시집이라는 형태로 나와 헌책방이든 새책방이든 접근 가능한 대부분의 책들을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는 사이 자연스레, 거창한 이론을 통해서가 아니라, 저만의 시적 계보 따위를 그릴 수 있게 되었고, 이어 한국시란 무엇인지, 산문시라는 말이 한국시에 있어 과연 타당한 말인지, 혹은 한국시의 시작을 에워싸고 있는 근대란 무엇인지 등을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는 사이 일본의 시인 타무라 류이치나, 중국의 루쉰 등을 접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당시 있어보이는 척 하는 선생들이 산책자이니 벤야민이니 플라뇌르니 아우슈비츠니 아도르노니 어쩌구 하면서 보들레르나 파울 첼란 등을 거론하는 것에 의문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한국에서 행해지는 대부분의 시 번역이 형편 없지만 당시 한국에 소개된 서양시 번역들을 읽고서 저 사람들은 정말로 저런 어려운 말들을 하며 시를 이해하는 척을 할 만한 지성이 있는가 의아했기 때문입니다.

뭐 그 선생이란 사람들이 다 거짓말쟁이라는 것을 아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어쨌든 서양시와 달리 문화적으로도 언어적으로도 가까운 일본과 중국 작가의 작품은 언어의 한계를 너머서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3달 정도 중국을 유랑하기 전에 6개월 정도 매일 새벽 시사차이나학원이라는 곳에서 중국어를 배웠고, 어느 정도 중국어로 헛소리를 지껄일 수 있게 되었을 때 다시 루쉰을 읽었습니다.

루쉰의 책을 원서로 구입하고, 기존 번역문을 옆에다 펼쳐 두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보면 번역이라기보다는 윤문 정도였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제게는 생전 처음으로 했던 번역 작업이었고, 그 결과물이 위에 소개한 「희망」이라는 시입니다.

당시에도 지금도 루쉰의 문학이나 당시의 배경 따위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에게 희망이라는 것이 그렇게 희망적이지 않다라는 것, 그것이 막막한 근대라는 점은 통감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제 그리 루쉰을 좋아하지도, 김광석의 노래를 자주 듣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새해가 올 때면 여전히 루쉰의 「희망」이 생각납니다.

그는 페퇴피 샨도르의 시가 아직도 죽지 않은 것에 슬퍼하지만, 그런 그의 시를 읽으며, 저는 그가 느낀 절망과 허망과 희망이 여전히 제게 진행형이라는 생각을 지우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루쉰을 포함한 다른 작가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임에 참가하고 싶으신 분은 위에서 알린 ‹ 작가와 작가 읽기 ›에 참여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Posted by vasist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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