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
4월10일부터 수요윤독회(22-24시)에서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완역본을 읽습니다.
지금까지 릴케가 젊은 시인 카푸스에게 보낸 편지만이 공개되어 있었지만, 2021년에 카푸스가 릴케에게 보낸 편지들이 독일어로 출판되었고, 한국에서는 제가 번역하게 되었습니다.
원어인 독어는 물론 불어/서어/일어/영어로 번역판이 있으니, 관심 있는 언어로 함께 읽고 (원하시면 번역 후 코멘트도 받을 수 있습니다.) 싶은 분은 문의바랍니다.
참가비는 없습니다.

<본문>
하늘 보기 힘든 서울 아파트에서 자란 제게 자연은 어색하게 건물 틈을 메우는 것일 뿐, 무엇보다도 제일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었습습니다. 아스팔트의 갈라진 틈새라던지, 비온 뒤 도랑 위 폐유 위로 번지는 무지개가 차라리 심연이고 오색찬란이었습니다.

그런 제 마음을 처음으로, 그리고 오랫동안 홀로 이끌던 꽃 하나, 바로 목련입니다. 계절에 변화에도, 피고 지는 꽃에도 둔감했지만, 살던 아파트가 봄 언저리에 목련으로 가득했기에, 큼직한 꽃잎이 급식우유마냥 희었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꽃잎이 시들고, 꽃잎이 지고, 사람 발모양 같은 꽃잎이 사람 발에 짓밟히고, 꽃잎으로 뒤덮인 도로가 진창마냥 지저분해졌기에, 아 이러면 봄이 온 것이구나하고 알 수 있었습니다.

마냥 아름다운 벚꽃보다는 언제나 엉망진창으로 끝나는 목련이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무렵,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을 나왔습니다. 심적으로 가까운 적 없던 가족과 물리적으로 멀어졌고, 처음하는 수학공부에서 증명의 즐거움을 알았고, 대학 갈 마음이 없어 종일 왼손이나 연습할 겸 수학 증명과 교과서나 문제집에 실린 시를 왼손으로 베껴쓰는 동안에도, 머릿속에서는 목련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후로 목련은 계속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아니, 생각해보면 제가 따라다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달에 한 번 서울로 돌아왔을 때 거리에서 처음으로 김광석의 음반을 샀고, 가족사로 음악을 싫어하던 제가 처음으로 음반 전체를 듣고 또 들었습니다. 김광석이 부른 노래를 전부 다 외웠고, 그 중에도 제일 좋아했던 노래가 「회귀」였고, 이후 곰팡이 피는 기형도의 시를 좋아했고, 그 뒤에 실린 김현의 해제를 읽었고, 김현의 전집을 읽었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전집을 읽었고, 아무런 이해도 못했지만 『지하생활자의 수기』가 목련 같아 좋았습니다.

김광석 -  「회귀」 링크
https://youtu.be/C8pSpokZAP4?si=LOFuL8e7yBgjjxap

관심도 없던 문학을 공부해보겠다고 국문과에 들어갔고, 원만치 못한 성격임에도 문학이라는 어정쩡한 이름에 맞물려 이런저런 사람들과 술을 마셨고, 생전 가지도 않던 노래방에서 김광석의 노래만 불러댔고, 문학이론입네 철합입네 하며 어려워 보이는 것들을 읽고 괜히 유식해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지, 제게 있어 강점은 명석함보다는 무지하고 막지함임을 감지했습니다. 그때부터 어려운 책들은 멀리하고 오직 1차텍스트만을,  그중에서도 현대시를, 처음에는 한국현대시를, 이어서는 한국어로 출판되어 구할 수 있는 시라면 가리지 않고 마구 읽었고, 언제나 속시끄러웠고, 언제나 지저분했고, 언제나 비장했고, 언제나 엉망진창이었습니다.

먹고 마시는 사이 체중은 127키로까지 쪘고, 몸과 마음은 물론 계속 읽고 쓴들 도무지 단련되지 않는 저의 언어도 모두 미련하기만 했는데, 더는 현대시라는 이름으로 읽을 책들이 남지 않아 점점 이전으로 소급했고, 번역된 파울 첼란의 ‘죽음의 푸가’와 T.S. 엘리엇의 「알프레드 프루프록의 연가」를 읽으면서, 그리고 일본어와 프랑스어 사전을 뒤져가며 다무라 류이치의 ‘가라앉은 절’과 프랑시스 퐁주의 「가을의 끝」을 더듬고, 이상의 「가외가전」을 몇 번이고 다시 고쳐 읽으면서 저는 이루는 모종의 근대를 생각했습니다.

제게 있어 근대는 끝없이 짓밟히고 뒤섞이며 반복과 변주였습니다. 잡힐 듯 도망가고 도망가면 뒤쫓는 추복곡fuga이며 둔주곡fuga이었고, 목련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목련에 겨워 혼잡한 나와 나의 언어를 규정définir하기 위해서는 안에서부터가 아니라 밖에서부터, 끝fin을 분명히dé- 하는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파리와 베를린과 뮌헨에서 낯선 언어들을 익히면서도 저는 계속 목련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제 언어는 더 명료하게 뒤섞였습니다. 모국어라는 환상에서 벗어났고, 낯선 언어들만큼이나 한국어도 더 생경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회귀」를 들었고, 조연호의 「달의 목련」도 좋아했고, 목련의 학명이 프랑스 학자 마뇰Magnol의 이름을 따서 마그놀리아Magnolia라는 게, 음차어도 아닌데 목련과 가깝게 들리는 게 너무도 신기하고 즐거웠습니다.

뮌헨대에서는 바하만의 『말리나』를 읽는 수업에 참여했는데, 저는 바하만의 『말리나』를 연인이었던 첼란이 쓴 「죽음의 푸가」의 변주로, 분분히 떨어져 뒤섞이는 목련으로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때 첼란의 「죽음의 푸가」를 공들여 번역했습니다.

파울 첼란 - 「죽음의 푸가」 번역링크
https://vasistas.tistory.com/84

학교에서의 공부를 그만 두고 한국에 와서 번역을 하고 출판사를 차렸는데, 제가 생각한 문학이며 독자는 보이지 않고, 몰개성적으로 개성을 탐하는 쭉정이들의 각축전만이 난무했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더욱 혼잡하면서도 명료해질 줄 알았던 저와 제 언어는 언젠가부터 마모되어 굳어가 마찬가지로 쭉정이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작업했던 릴케의 ‘두이노 비가’ 르베르디의 ‘헤아림 너머’를 읽으면서, 이런 언어로부터 너무 멀어진 것은 아닌지, 이제 그 경지에 다시 도달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더는 천둥벌거숭이처럼 미지를 향해 자기 자신을 내던질 수 없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졌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는 다시 목련을 생각했고, ‘회귀’를 들었고, 속이 시끄러웠고, 머리가 아팠고, 사실 이때부터 공황장애 증상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 줄도 모르고 수업할 때든 언어를 가르칠 때든 번역을 할 때든 술을 마셔서 몸의 증상을 달랬습니다.

피에르 르베르디 - 「헤아림 너머」 번역링크

https://vasistas.tistory.com/87



독자public에 대한 기대도 사라졌기에 출판publishing은 때려치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마지막으로 다시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자 에콰도르로 떠났습니다. 미련한 마음에 떠나기 동네에 돋은 목련 순을 꺾어서 가방에 넣었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는 신기한 곳이었습니다. 적도 한 중간에, 그것도 고도 2000미터가 넘는 곳에 위치한 세계에서 제일 높은 수도인 이곳에는 계절이 없었습니다. 구름을 밟으며 어학교에 갔고, 계절은 순환하지 않았고, 반복도 변주도, 상실과 회귀도 없었고, 사람도 자연도 마냥 맑고 마냥 건강했습니다. 에콰도르에 있으면서 저한테는 ‘힘들게 상상된 과거로 돌아가려는 동경nostalgia’의 마음이 사라졌고, 가방에 간직한 목련은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이후 북반구와 계절이 거꾸로인 도시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넘어가 1년 반을 살면서도 남미의 웅장함에 매일 감탄했습니다. 촌스러워 보이던 아르헨티나 국기가, 그토록 맑고 파란 하늘에 한 점 걸린 구름 같이 보며 너무도 아름다웠습니다. 오래 돌고 돌아 처음 프랑스어를 배울 때부터 읽기 시작했던 프랑시스 퐁주의 ‘사물의 편’을 번역하며 계절과 봄과 목련과 상실에 대한 마음을 끝맺었습니다. 때는 9월 21일이었습니다. 그 날은 축복 받은 기억 없던 제 생일이었고, 남미에서는 봄의 시작인 날이었습니다. 저는 봄에 태어난 사람이 되었고, ‘9월 21일 봄의 첫날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라는 말로 번역을 마쳤습니다.

한국처럼 목련이 많지는 않지만 도쿄에서도 길을 걷다 보면 목련이 눈에 띌 때가 있습니다. 오늘은 자목련을 보았고, 그저 이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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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제가 오래 읽고 작업한 작가들의 작품을 그와 상응하는 한국 작가의 작품과 함께 읽는 모임입니다.

저는 평소 문학을 제 작업 외에 딱히 에세이나 공개 장소에서 나불거리며 소모하지 않기에, 저의 문학이 다른 사람들의 문학과 어떻게 다른 지도 조금은 보여드릴 수 있겠습니다.

관심 있는 분은 제 인스타를 확인 바랍니다: @traducteur_etudi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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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편으로부터 › 제3회 - 망년과 송년, 그리고 희망

연말연시는 잘들 보내고 계신지요. 저는 올 한 해 많은 친구들과 함께 있었고, 살면서 처음으로 여러 사람들 속에서 불화 없이 마냥 즐거웠습니다. 그럼에도 습관 탓인지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언젠가부터 망년회가 송년회로 바뀌었는데,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96년도에 이미 ’퇴폐적인 뜻이 담긴 망년회란 일본식 말을 쓸 것이 아니라 뜻도 맞고 어울리는 송년회’라고 권장을 하고 있습니다.
https://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19961207000900

어째서 퇴폐적인지는 잘 이해가 안 가지만, 누군가에겐 한 해를 잊어야 할 망년회여도 좋고, 누군가에겐 한 해를 보낼 송년회여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저는 오래 이어진 속시끄러움을 마침내 잊어버릴 때가 된 것 같아, 좋은 친구들과 망년회 보냈습니다.

새해라는 것에 취해 한국에서는 보신각 종을 울리고, 독일이나 중국에서는 거리거리마다 폭죽을 터뜨리고(코로나 때에는 어땠을지 모르겠습니다), 에펠탑 밑에서 모르는 사람과 부둥켜 않고, 또 누구는 작심삼일이 되기 십상인 새로운 목표나 계획따위를 세워봅니다.

이러한 수작에 원체 관심이 없던 제게 새해는 그저 단어에 지나지 않았는데, 문학을 공부하고 스무 살 즈음부터 지금까지도 한 명의 작가, 루쉰을 떠올리곤 합니다.

일본에서 유학을 하며 동양적 근대에 대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했던 루쉰은 1925년 1월1일에 ’희망’이라는 시를 발표합니다.


희망
루쉰 지음, 최성웅 옮김

내 마음 유달리 쓸쓸하다.
그럼에도 편안한 마음이다. 애증愛憎도 애락哀樂도 없고, 색도 소리도 없다.
아마도 나이가 들었음이라. 내 머리가 벌써 반백半白인 것은 분명 사실이 아니던가, 손이 떨리는 것 또한 분명 사실이 아니던가. 내 넋의 손도 떨릴 것이며, 내 넋의 머리도 반백임이 틀림없다.
물론 이는 여러 해 전부터의 일이다.
내 마음도 피비린내 나는 노랫소리로 가득 차 있을 때 있었다. 피와 쇠, 불꽃과 독, 회복과 복수로. 그러나 순간 이 모든 것들은 텅 비고야 말았다. 덧없는, 자기기만적인 희망으로 메워보려고도 하였다. 희망, 희망, 이 희망을 방패삼아 덧없이 밀어닥치는 어두운 밤을 거부하려 하였다. 비록 방패 안쪽 또한 텅 빈 어두운 밤일뿐일지라도. 나의 청춘은, 그렇게, 서서히, 소모될 따름이었다.
내 청춘이 지나갔음은 진작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몸 바깥의 청춘만은 남아있으리라 믿었다. — 별, 달빛, 빈사瀕死의 나비, 어둠 속의 꽃, 수리부엉이의 불길한 소리, 피를 토하는 두견새, 웃음의 유현幽玄함, 사랑의 난무…… 슬프고, 또 덧없는 청춘이라 할지라도 청춘은 역시 청춘이다.
허나 지금은 어이하여 이다지 쓸쓸한가? 설마 몸 밖의 청춘도 모두 다 사라지고 세상의 청년들이 모두 늙어 버린 탓은 아닐는지?
나는 혼자서 이 텅 빈 어두운 밤에 도전할 수밖에 없다. 나는 희망의 방패를 버리고, 페퇴피 샨도르(1823-49)의 '희망'의 노래에 귀를 기울인다.
          희망이란 무엇인가? 창녀여.
          누구에게나 웃음을 팔고 모든 것을 주며,
          그대가 많은 보물-그대의 청춘을 잃었을 때
          그대를 버린다.
이 위대한 서정시인, 헝가리의 애국자가 조국을 위하여 코사크병의 창 끝에 죽은 지 어느덧 75년이 지났다. 죽음은 슬픈 것이지만, 더욱 슬픈 것은 그의 시가 아직도 죽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애처로운 인생이여! 저 용감무쌍한 페퇴피조차도 마침내 어두운 밤 앞에 발을 멈추고 망망한 동방을 돌아본다. 그는 말한다.—
절망은 허망虛妄이다. 희망이 그러함과 같이.
만약 내가 불명불암不明不暗의 '허망' 속에 목숨을 부지해 갈 수 있다면, 저 지나간 슬프고도 덧없는 청춘을, 비록 내 몸 밖에 있다 할지라도, 나는 찾아내리라. 내 몸 밖의 청춘이 한번 소멸하면, 내 몸 안의 황혼도 동시에 시들 터이니.
그러나 지금은 별도 달빛도 없고, 빈사의 나비도 없으며 웃음의 유현함도 사랑의 난무도 없다. 청년들은 평화스럽다.
나는 혼자서 이 텅 빈 어두운 밤에 도전할 수밖에 없다. 비록 내 몸 밖의 청춘을 찾아내지 못한다 해도, 내 몸 안의 황혼만은 떨쳐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허나, 어두운 밤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은 별도 없고, 달빛도 없고, 웃음의 유현함도 사랑의 난무도 없다. 청년들은 평화롭다. 그리고 내 앞에 참된 어두운 밤조차도 없는 것이다.
절망은 허망이다. 희망이 그러함과 같이!

1925년 1월 1일

「희망」이 수록된 루쉰 유일의 산문시집 『들풀』



조금 이야기를 돌려보자면, 한국에서 잠깐 대학에 들어가 시를 읽기 시작하고 2년 정도 지났을 때, 저는당시 한국에서 시집이라는 형태로 나와 헌책방이든 새책방이든 접근 가능한 대부분의 책들을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는 사이 자연스레, 거창한 이론을 통해서가 아니라, 저만의 시적 계보 따위를 그릴 수 있게 되었고, 이어 한국시란 무엇인지, 산문시라는 말이 한국시에 있어 과연 타당한 말인지, 혹은 한국시의 시작을 에워싸고 있는 근대란 무엇인지 등을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는 사이 일본의 시인 타무라 류이치나, 중국의 루쉰 등을 접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당시 있어보이는 척 하는 선생들이 산책자이니 벤야민이니 플라뇌르니 아우슈비츠니 아도르노니 어쩌구 하면서 보들레르나 파울 첼란 등을 거론하는 것에 의문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한국에서 행해지는 대부분의 시 번역이 형편 없지만 당시 한국에 소개된 서양시 번역들을 읽고서 저 사람들은 정말로 저런 어려운 말들을 하며 시를 이해하는 척을 할 만한 지성이 있는가 의아했기 때문입니다.

뭐 그 선생이란 사람들이 다 거짓말쟁이라는 것을 아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어쨌든 서양시와 달리 문화적으로도 언어적으로도 가까운 일본과 중국 작가의 작품은 언어의 한계를 너머서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3달 정도 중국을 유랑하기 전에 6개월 정도 매일 새벽 시사차이나학원이라는 곳에서 중국어를 배웠고, 어느 정도 중국어로 헛소리를 지껄일 수 있게 되었을 때 다시 루쉰을 읽었습니다.

루쉰의 책을 원서로 구입하고, 기존 번역문을 옆에다 펼쳐 두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보면 번역이라기보다는 윤문 정도였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제게는 생전 처음으로 했던 번역 작업이었고, 그 결과물이 위에 소개한 「희망」이라는 시입니다.

당시에도 지금도 루쉰의 문학이나 당시의 배경 따위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에게 희망이라는 것이 그렇게 희망적이지 않다라는 것, 그것이 막막한 근대라는 점은 통감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제 그리 루쉰을 좋아하지도, 김광석의 노래를 자주 듣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새해가 올 때면 여전히 루쉰의 「희망」이 생각납니다.

그는 페퇴피 샨도르의 시가 아직도 죽지 않은 것에 슬퍼하지만, 그런 그의 시를 읽으며, 저는 그가 느낀 절망과 허망과 희망이 여전히 제게 진행형이라는 생각을 지우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루쉰을 포함한 다른 작가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임에 참가하고 싶으신 분은 위에서 알린 ‹ 작가와 작가 읽기 ›에 참여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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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15일부터 매주 금요일 20시에 5회 간 「작가와 작가 읽기」라는 이름으로 다음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제가 오래 읽고 작업한 작가들의 작품을 그와 상응하는 한국 작가의 작품과 함께 읽는 모임입니다.

 

저는 평소 문학을 제 작업 외에 딱히 에세이나 공개 장소에서 나불거리며 소모하지 않기에, 저의 문학이 다른 사람들의 문학과 어떻게 다른 지도 조금은 보여드릴 수 있겠습니다.

 

관심 있는 분은 제 인스타를 확인 바랍니다: @traducteur_etudi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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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최성웅입니다.

 

공사가 다망하여 그간 격조했습니다.

바쁜 와중에서도 ‹ 저편으로부터의 두 번째를 무엇으로 할까 고민을 했는데, 어제 제가 어쩌다 보니 기획하여 시작된 부쟁고 야회에서 우노 쿠니이치 선생님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주제를 정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들뢰즈의 제자이자 질 들뢰즈 및 앙토냉 아르토 전공자로 유명한 선생님인데, 선생님 관련 잡담은 인스타 피드백을 확인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노 쿠니이치 선생님과의 만남을 계기로 시인 요시오카 미노루와 암흑무도의 창시자 히지카타 타츠미에 관해 간단히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이 둘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다른 두 명의 작가를 거론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는 프랑스 작가 장 주네(1910-1986)이고, 또 다른 하나는 다름 아닌 미시마 유키오(1925-1970)입니다.

 

장 주네

기존의 장르와 권위 속에서 비롯하는 대부분의 시시한 문학 혹은 문학인과 달리, 장 주네는 파리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창부였던 어머니의 버림을 받고, 10세 때는 굶주린 배를 억제하지 못하고, 애정에 굶주려 절도죄로 감화원에 들어갑니다. 그 후 주네는 탈옥하여 거지, 도둑, 남창, 죄수로 생활을 하며 유럽 전역을 방황합니다. 1942년 독일 점령기에 투옥되었을 때에는 그의 나이 서른두 살로, 그때 그는 처녀작 《꽃의 노트르담》과 자서전 성격이 강한 《도둑일기》를 썼습니다.(《장미의 기적》은 이로부터 2년 뒤 세상에 나옵니다.)

 

이러한 장 주네에게 크게 영향을 받은 일본의 작가가 있었으니,바로 미시마 유키오입니다. 장 주네와 달리 왕족과 귀족 도련님들이 다니던, (사족이긴 하지만 제가 석사 학위를 받은 곳이기도 한) 가쿠슈인에서 초중고를 마치고 동경대 법학부를 졸업한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지만, 그렇기 때문에 되레 장 주네에게 더욱 끌렸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초가 되기 전 유약한 미시마

미시마 유키오는 장 주네의 《도둑일기》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평을 쓰기도 했습니다 :

“(주네는) 경력만으로도 굉장하지만, 괴물 작가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것 만이 아니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남색·도둑질·배신의 세계를 그리면서 그것을 거룩한 높이에 올리려고 했다. , 가치관의 전복을 시도한 것이다.”

 

이러한 장 주네에 대한 독서 편력은 미시마 유키오에게 큰 영향을 끼쳤고, 적어도 자기 개조 이후 금각사를 쓰기 전까지, 나약한 다자이 오사무가 죽은 다음 그는 못 생겼으니 기계체조와 냉수마찰이나 했으면 좋았다는 신랄한 글을 쓰기 전까지, 그러니까 동성애가 주제로 나오는 《가면의 고백》과 《금색》에 이르기까지는 주된 참고 작가였을 것입니다.

 

이러한 장 주네와 미시마 유키오의 영향 아래에서 한 명의 무도가와 한 명의 시인이 탄생합니다. 서양의 전위前衛를 답습하는 데 급급한 것이 아니라, ‘가치관의 전복을 시도하는, 서구와 비서구의 위치를 뒤집어 엎는 전위顚位로서의 예술, 전위로서의 문학을 탄생킵니다. 다름 아닌 히지카타 타츠미(1928-1986)와 요시오카 미노루(1919-1990)가 말이지요.

히지카타 타츠미에 대해서는 전공자이자 유일하게 한국어로도 작업한 이재인 님의 논문에서 몇 문장을 소개하는 것으로 갈음하겠습니다. 이재인 님의 두 편의 논문도 첨부하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보면 좋겠습니다. :

 

히지카타 타츠미는 독일의 현대 무용을 전공한 에구치 타카야의 제자인, 마쓰무라 카츠코가 아키타시에 연 현대무용 연구소에서 독일계 현대무용을 배우는 것으로 무용을 시작하였다.”

 

이후 (...) 1959, 드디어 암 흑부토의 첫 작품으로 알려진 <킨지키(禁色)>를 발표하게 되었다. <킨지키> 는 미시마 유키오의 동명 소설 《금색》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창작된 작품으로서, 동성애의 테마나 , 남색적인 움직임, 암전을 사용한 조명 등 무대 위의 모든 연출이 당시의 일본의 현대무용계의 규범으로부터 벗어난 것이었으며, 매우 보수적이었던 당시의 일본 무용계로부터 보기에 무용으로서 인정하기 어려운 무대였다고 한다. 하지만 엄격한 일본의 무용계로부터는 혹평을 받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당시의 일본의 전위 미술가나 미술 평론가들, 문학가들로부터는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성공했다. 히지카타의 작품에 주목하였던 당시의 저명한 문학가들 중 한 명이, 부토 작품 <킨지키>의 모티프가 되었던 소설 《금색》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였다. 미시마는 히지카타의 부토 작품 <킨지키>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가의 글을 남겼다.

 

우리들을 놀라게 하는 것은, 육체의 돌연의 움직임, 돌연의 고함 같은 것이, 우리의 일상적인 기대에 거의 응답하지 않고, 우리들의 목적의식에 끊임없이 정묘하게 외면하기 때문이다. (...) 춤이 시작되어 끝날 때까지, 그 시간적 계속을 보증하는 것이, 음악이 아니라, 단지 몇 개의, 반 자각적이고 반 몽환적인 땀에 젖은 육체라고 하는 것은, 무용이라고 하는 것이, 육체에 대해 부과하고 있는 순수성의 의미 그 자체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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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실 히지카타 타츠미에 빠지게 된 것은 이재인 님의 논문 때문도, 우노 쿠니이치 선생님의 저서 《히지카타 타츠미 쇠약체의 사상》 때문도, 미시마 유키오 때문도 아닌 한 시인으로부터였습니다.

 

저는 매주 목요일 저녁에 일본어로 일본현대시를 함께 읽고 의견을 나누는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혹시 일본어 공부를 하거나 일본어로 참여하고 싶으신 분은 따로 연락주셔도 좋습니다.) 일본에서 만난 사람들을 멋대로 끌어들여 진행하는 모임이라 동경대의 학생부터 선생까지 주로 모이고, 그 외에도 중국인 유학생과 한국인 친구들도 참여해 적당히 한중일 3국의 평화(?)를 도모하고 있는 모임입니다.

 

일본에 온 지 3년이 지나서야 드디어 본격적으로 일본의 근현대시를 읽어나가고 있는데, 학교 수업에서는 근대시까지만 다루기에, 현대시를 읽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너무 부담이 되면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참가하기가 힘들기에, 일주일에 한 번, 한 시인의 작품 2-3편 정도만 함께 읽고 의견을 나누는 정도입니다.

 

그래도 매번 돌아가며 누군가 한 명은 자신이 좋아하는 시인의 작품을 선정해야 하고, 그 사람의 안목을 바탕으로 문학전공자들이 토론을 하기에, 나름의 쫄깃함도 있고 재밌는 시간입니다.

 

이 모임에서 몇 주 전에 알프레드 자리 연구자인 사와라 상이 고른 작품이 바로 요시오카 미노루의 시였습니다. 평소에도 진지 그 자체인 사람이고, 시평론으로도 상을 받았던 사람이기에, 어떤 시를 가져올까 궁금했는데, 놀랄 정도로 묵직한 다음 두 편의 시를 가져왔습니다. (다 보여주긴 좀 길기도 하고 아깝기도 하여, 한 편만 소개후 다른 한 편은 다른 곳에서 보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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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안마 어휘편

요시오카 미노루 지음, 최성웅 옮김

 

1

나는 보았다!

어스름한 남동 방향을 목표하여

한 노파가 가지런히 모은 두 손의 끝

그 높이까지

수면은 솟아오른다

그 수면이 이윽고 수평이 됐을 때면

옛 마을잔치 같은

그리운 느낌이 든다

수상한 냄새 뒤가 구림

구체성은 이미 온데간데없고

금가루 흩날리고

우아한 목숨이 끊어질 듯한 일몰의

관념의 틀로부터 떨어져나오는

관절의 평야로

언어로부터 부토로 그리고 풍경을 바꿔서

‘젖먹이 아이의 뺨에 가 닿는다

그물코로부터

나는 무엇을 들여다보면 좋은가

상인방上引枋의 먼지

잘록한 가지 꽁무니

낙지 빨판이 빨아낸 것

또는 추상화된 선

사랑’

기물과 한 패가 되기

를 끝마치고자

‘나는 침상에 만주를 끌어들인다’

 

2

옛부터

큰 톱이 있었으니

몽둥이에 감겨

있는 천이나 붉은 실 있었으니

불 붙은 어미의 반백발 좋아

풀솜으로 폭신하게 둘러쌓인 언니의 발 더듬어

‘위에 가면 정령 아래에 있는 것

이 인형’

그리고

어찌할 할 도리가 없는

‘한 패인 것이 육체’

이윽고 동틀 녘

‘밥 먹고 뒷문으로 빠져나오는 듯한 것이 혹은 도호쿠본선

그래서 메밀국수집의 열한 번째 막내는

사탕 말고

‘재래식 변기 앞대가리에 이빨을 들이민다’

밤은 단조롭기에 탐미적이다

생강을 갈듯

창문살 엮는 장인의 노랫소리 들린다

 

3

‘치조농루를 앓는 아빠가 엄마의 기저귀를

씻고 있는 강가에서 형이 돌을

들어올리면

공처럼 둥글게 변하는 곤충이 있다’

몸을 작게 만들기

‘사물의 울타리 속에서 몸의 길이를 잰다’

이것이 이른바 가仮매장

나무젓가락을 둘로 가르며

연옥부토의 그림을 생각한다

나는 물벌레 사람

강물에 떠내려가는 수박을

죽은 자와 함께 먹는다

한밤중 천연두 투성이의 인물은 누구인가?

김이 나온다

덧문짝에 몸이 얹힌 채

연어 머리를 갉아 먹는 남자가 보인다

염천 아래에서

오돌토돌한 오이가 자라난다

종교화 마냥

 

4

장화를 신은 채로

새신부는 돌아온다

절연애자와 눈의 세계로부터

뚝뚝 나를 낳기 위하여

벽장 안으로 들어간다

‘움직이지 않는 것과 움직이고 있는

것 반반’

나는 몸 성히 태어날 것인가?

‘성스러운 각도를 더듬는 자’

가 되려는

왜인지 무서운

애를 떼기 위한 약 끓는 소리다

마대를 뒤집어 쓴 말이 일어나고 일어나

혼을 불러일으키고자 한다

재단과 재의 바닥

이것은 매우 상식적인 형식이 아니던가

‘물고기의 부레를 철썩 짓이긴다’

할 정도로 자연 그 자체다

나의 꿈꾸는 연골에 필요한 것은

사물의 발정과 콜타르의 악취다

다시 살아난다는 유머도 곁들여

‘쇠뜨기를 씹는 노인의 턱을 빼면

불이 뿜어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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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시는 요시오카 미노루의 후기 시집 중 첫 시집으로 거론되는 《사프란 따기》(1976)에 등재된 작품입니다.

 

전기 시는 어둡고 조금은 불쾌한 풍경을, 오브제를 묘사하였고, 개중에 제가 한국에 소개했던 미즈노 루리코의 《헨젤과 그레텔의 섬》과 마찬가지로 H씨 상을 수상한 《승려》(1958)이 가장 널리 알려진 시집입니다.

 

저는 아직 《승려》를 꼼꼼히 읽어본 적이 없지만, 《사프란 따기》에 나온 시들은 제가 일본에서 읽은 모든 시들보다 매력적이었습니다.

 

모임에서 곧장 일본어로 읽으면서 토론하기는 힘들기에, 미리 번역을 해가는데, 요시오카의 문체 자체에 빠져버렸고, 이후 토론을 하면서 더 재밌는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요시오카 미노루의 후기 시 특징은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해서 시를 썼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의 말이라 하면 정말로 소리 내어 내뱉어진 , 어설픈 책상물림의 지적 인용과는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

 

저는 요시오카 미노루를 읽으며 장정일의 천둥벌거숭이성과 황지우의 교활함을 동시에 느꼈는데, 그는 실제로도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이후 상업학교에 다니기는 했지만 중퇴를 한 게 학력의 전부인 시인이었습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지만 (요즘의 한국은 다른 이유로 아니지만) 작가입네 지식인입네 하는 자들이 대부분 고학력자인 곳에서, 장 주네와 마찬가지로, 장정일과 마찬가지로, 요시오카 미노루의 언어에 거침도 한계도 없을 것만 같은 동물적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것은 단순한 착각이라 치부할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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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문학이 되는 장소는 어디 쯤일까요? 저는 요새 한국에서 과연 근대문학이 성립하였는지 의문을 품고 있습니다. 문학은 문학이라는 단어 자체도 번역어로서 성립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근본적으로 서구적이고, 근본적으로 제국적인 면이 있습니다.

 

그런 문학을 넘어 문학을 한다는 것이 과연 적당히 다름과 평등과 다양과 소수의 목소리에 집중하는 것으로 가능한지 저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일본 근대 문학의 성립이 제게 있어서는 자신들만의 장르의 구축과 긴밀한 연관 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엉터리 방터리일지언정 프랑스 자연주의를 습득하려 했고, 그 결과 자신들만의 독특한 사소설이라는 장르를 창출해 내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닌 필사적으로 서양을 따라잡으려던 노력에서, 서양의 언어를 받아들이려는 절박함에서 기인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모리 오가이 기념관에서 볼 수 있는 모리 오가이의 독일어 노트, 일본어에 앞서 문학은 서양어로 해야 한다는 생각에 영어로 시를 썼던 니시와키 준자부로 등, 아직 사전도 학습 자료도 미비했던 시절에 모국어의 한계를 넘어 괴물 같은 언어를 구사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들여오려고 했던 문학이, 번역이 있었기에 일본의 아방가르드는 단순한 번역어로서의 전위前衛가 아닌 전위顚位일 수 있지 않았을까, 그 결과로 오히려 (한국을 빼고?) 전 세계로 역수입된 히지타카 타츠미의 암흑무도와 요시오카 미노루의 시가 있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일본 문학의 한 장소이지 않을까, 이것이 저의 요즘 생각입니다.

 

조금 더 쓰고 싶지만 피곤해서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문학에 관한 이러한 잡담이 듣고 싶다면 위에서 공지한 「작가와 작가 읽기」에 부디 참가 바랍니다. 5회만이 아니고, 다른 분야의 재밌난 분들을 섭외했는데, 사람이 없으면 그냥 끝내야 해서 좀 아쉬운 마음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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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지카타 타츠미 관련 이재인님 논문:

히지카타타츠미_이재인.pdf
2.67MB
히지카타타츠미2_이재인.pdf
0.89MB

Posted by vasist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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