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찍히는 자

     나도 모르는 사이 바라봄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감정의 움직임을 탐구 지침으로 삼은 나로서는 이와 관련해 아직 말할 계제가 아니다. 그러나 빈번히 (너무도 자주, 내 의사에 따라), 스스로도 의식한 상태에서, 사진을 찍혀 왔다. 그런데 그럼에도 렌즈를 통해 바라본다는 느낌을 받게 되면, 당장에 모든 것이 달라진다 : ‘포즈를 취하는’ 과정에서 나는 나를 구성하고, 순간 내게 다른 몸뚱어리를 만들어주고, 앞서 나 자신을 영상image으로 탈바꿈한다. 이러한 변모는 능동적이다. 나는 사진이 제 뜻대로 내 몸뚱어리를 창조하거나 죽인다는 느낌을 받는다. (여기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힘에 관한 일화가 있다. 파리 코뮌에 가담한 치들 중 몇몇은 바리케이드 위에서 포즈를 취하고 논 댓가로 목숨을 지불했다. [투쟁에서] 패배 후 그들 신원은 경시청감 티에르의 부하경찰들에게 파악되었으며, 거의 전원 총살당했다.)
     렌즈 앞에서 포즈를 취할 때 (즉 잠깐일지언정, 포즈를 취하고 있는 나를 의식할 때), 나는 저들 만큼 위험을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겪지 않는다. 물론 사진가로부터 획득한 나란 존재는 은유에 지나지 않으리라. 하지만 이러한 종속이 상상이라 한들 (또 가장 순수한 상상일지언정), 불분명한 친자관계에서 기인한 번민에 사로잡혀 겪게 되는 일이 있다. 즉 하나의 영상이 — 나의 영상이 — 태어날 텐데, 그 출산의 결실인 나란 불쾌한 자식인가 아니면 ‘괜찮은 놈’인가? 만에 하나 인화지 위로 빠져나온 내가 고전주의 그림마냥, 고귀하고 사려깊고 지적인 기색 등등을 품부할 수 있더라면! 요컨대 (티치아노[각주:1]의) ‘그림’이거나 (클루에[각주:2]의) ‘소묘’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손짓발짓이 아닌 섬세한 정신적 직물이 포착되었으면 하는 나의 바람과 달리, 몇몇 인물사진의 거장의 경우를 제외하면 사진이 그리 복잡다단하지는 않기에, 어떻게 행동해야 내면을 거죽 위로 끌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입술과 눈가에 ‘표표히’ 가벼운 미소를 ‘띄워’ 그 미소가 하나로 ‘규정되지 않기를’ 바라고, 또 이를 통해 타고난 기질은 물론 사진촬영이라는 예식에 내가 전적으로 즐겁게 임한다는 의식이 읽힐 여지를 마련하고자 한다. 예컨대 나는 사회적 유희에 참여해, 포즈를 취하고 있으며, 이를 내가 알고 있을뿐더러 당신들도 알았으면 싶고, 또 그럼에도, 이러한 추가 정보가 조금도 (비록 원적문제마냥 실상은 불가능하지만) 나라는 개인의 귀중한 본질을, 어떠한 상像에도 속하지 않는 나란 존재를 손상시켜서는 아니되겠다. 따라서 나의 영상이, 세월과 정황에 따라, 변화하는 수천의 사진 속에서 움직이고 요동친들, 언제나 나의 ‘자아’와 (사족이겠으나 나의 심원한 자아와) 일치했으면 싶다. 하지만 이와 반대되는 경우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자아’는 나의 영상과 결코 일치하지 못한다. 영상이 무겁고, 꼼작 않고, 완고한 것(그러하기에 사회는 영상에 의존적이다)인 반면, ‘자아’는 가볍고, 갈라지고, 흩어지는, 이른 바 잠수인형 같아, 한 자리에 있지 못한 채 나라는 용기容器 속에서 나를 뒤흔들어대기 때문이다. 아, 적어도 사진이 내게 중립적이고 해부학적인 육체를, 무엇 하나 의미 않는 그런 육체를 줄 수 있다면 좋으련만 ! 애석하게도 나는, 제 일에 자부하는 사진에 의해, 항상 표정을 짖도록 강요받는다. 따라서 내 몸뚱어리는 결코 스스로 영도零度를 찾을 수 없으며, 누구로부터 받지도 못한다 (어머니로부터는 가능할지도? 왜냐하면 영상의 무게를 없애 주는 것은 무관심이 아니라 — 경찰 감시를 받는 지명수배범을 만들기엔 ‘즉석 사진’ 류의 ‘객관적’ 사진만한 것이 없다 — 사랑, 지극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저 자신을 (거울과는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기. 이런 행위는 역사적 척도에서 매우 근래의 일로, 초상화란 그림이든 소묘든 세밀화든 사진 보급 전까지는 제한된 자산일뿐 아니라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용도였으며, — 그러니 어찌되었든 초상화란, 제 아무리 흡사하다 한들 (나는 이를 입증하고자 한다), 사진이 아니다. 이와 같은 새로운 행위로 인한 (문명적) 혼란이 고려되지 않았음은 이상한 일이다. 나로서는 시선의 역사를 제창했으면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사진이란 나 자신이 타자로서 도래하여, 동일성에 대한 의식을 교묘히 분리시키기 때문이다. 더욱 이상한 점은, 사진 발명 이전 사람들은 되레 그 어느때보다도 분신이라는 환영에 대해 많이들 이야기하였다는 것이다. 환각증의 하나로 치부하는 자기환시[각주:3]는 수세기 동안 널리 사용된 신화적 주제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사진 속 심원한 광기가 우리로 인해 억압을 받는 꼴이기에, 사진이 물려받은 신화적 유산은 그저 내가 ‘나’를 인화지 위에서 바라보며 느끼는 가벼운 불안에 의해 환기될 따름이다.
     이러한 혼란은 결국 소유권의 혼란이다. 법은 이와 관련해 나름의 방식으로 발언한다 : 사진은 누구의 것인가? (찍힌) 사람sujet[각주:4]의 것인가? 사진가의 것인가? 풍경 또한 토지소유자로부터 빌린 일종의 차용물일 따름인가? 모르긴 해도 수많은 소송들로 인해 드러난 것은, 다름 아닌 소유를 존재 근거로 여기는 사회에서 비롯한 위와 같은 불안이 아닌가 싶다. 사진은 주체sujet를 객체objet로, 심지어 박물관에 어울린다 말해도 좋을 객체로 변모시켰다. (1840년 경) 최초로 인물사진을 찍으려 했을 때에는, 태양이 내리쬐는 유리판 아래에서 피사체인 사람sujet이 장시간 포즈를 취하고 있어야만 했다. 사진의 대상objet이 되기란 외과수술마냥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당시 머리받침이란 기기가 발명되었는데, 이는 일종의 인공보정기로 렌즈에는 보이지 않았으며, 이것에 인해 지탱되고 유지되는 몸은 꼼짝달삭을 않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머리받침은 나로부터 거듭날 조각상의 토대, 즉 상상된 내 본질의 코르셋이었다.
     초상-사진은 힘겨루기의 장소다. 네 개의 상상된 힘들이 교차하고, 맞부딪히고, 변형된다. 렌즈 앞에서 나는 동시다발적 존재로,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자, 남이 나라고 생각했으면 싶은 자, 사진가가 나라고 생각하는 자, 제 기량을 선보이려는 사진가에게 사용는 자이다. 달리 말하자면 이상 행동이기는 하나 나는 부단히 나를 모방하며,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나를 찍게끔 할 때면 (찍게끔 내버려둘 때면) 단 한 번도 빠짐없이 진정성이 결여되었다거나, 또 가끔은 (몇몇 악몽에서와 마찬가지로) 기만이란 느낌이 든다. 상상에서 (내가 지향하는) 사진은 이처럼 매우 정묘한 순간을 나타내는데, 실제 그러한 순간에 나는 주체도 객체도 아니며, 되레 자신이 객체로 거듭나고 있다고 느끼는 주체이다. 이때 나는 (삽입구가 씌어진) 죽음을 축소판으로 체험하며, 정말이지 유령으로 거듭난다. 

  1. 티치아노 베첼리오(148x – 1576) : 이탈리아 르네상스기 화가. [본문으로]
  2. 프랑수아 클루에(151x – 1572) : 프랑스 르네상스기의 세밀화 화가. [본문으로]
  3. 자기환시héautoscopie란 바깥으로부터 저 자신 혹은 자신의 분신을 보는 환각으로, 조현병이나 간질 등에서 볼 수 있는 증상으로 간주한다. 자기환시 환자는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자기 위치 인식에 곤란을 겪을 수 있다. [본문으로]
  4. 흔히 주체와 객체로 번역되는 sujet와 objet라는 단어는 바르트가 후술할 사진의 특수성에 의해 개념의 변주가 불가피하다. 그 변주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원어를 병기한다. [본문으로]
Posted by vasist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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