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uela : 팔방치기

- 훌리오 코르타사르 지음, vasistas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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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침대에 앉은 오라시오 올리베이라의 목에서 세 번째 불면의 담배가 타들어 갔다. 앞서 그의 손이 한두 차례 기대어 잠든 마가의 머리카락 사이를 지나치기도 하였다. 때는 월요일 새벽이었고, 일요일 오후와 저녁 외출을 포기하고서 책을 읽고 음반을 들었고, 교대로 일어나 카페를 데우거나 마테를 말았다. 하이든의 사중주가 끝날 무렵 마가는 잠이 들었고, 올리베이라는 더 듣고 싶지가 않아 침대에서 전축 코드를 뽑아버렸다. 스피커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지만 음반은 몇 번의 회전을 이어갔다. 왜인지 몰랐지만 이 무기력한 멍청함에 그는 몇몇 곤충들이나 아이들의 아무 쓸모없어 보이는 움직임들이 떠올렸다. 잠이 오지를 않아 열린 창문 너머로, 가끔 꼽추 바이올리니스트가 오후 늦게까지 연습을 하기도 하는 다락방을 쳐다보았다. 날씨가 덥진 않아도 마가의 몸에 오른쪽 옆구리와 발이 따뜻했다. 천천히 마가로부터 떨어져 나와, 긴긴 밤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매우 기분이 좋은 상태였는데, 이는 언제나 마가와 서로 화를 낸다거나 부딪치지 않고서 만남을 끝낼 때 느꼈던 것과 동일한 감정이었다. 로사리오 지방의 견실한 변호사인 동생의 편지는 읽는 둥 마는 둥 하였는데, 동생은 네 장의 종이비행기를 날려가며 올리베이라가 외면한 시민과 자식 된 도리에 대해 역설하였다. 이런 편지를 보는 것은 정말로 즐거운 일이었기에, 자신의 친구들도 그 즐거움을 맛볼 수 있도록 벽에다 편지를 스카치테이프로 붙여 놓았다. 올리베이라에게는 동생이 섬세하게도 ‘중개소’라 불렀던 암시장을 통해 돈이 제대로 들어왔냐 만이 중요했다. 읽고 싶었던 책을 몇 권 사고, 마가에게 3천 프랑을 주어 그녀가 원하는 걸 하게 해줄 생각이었는데, 물론 그럴 경우 그녀는 진짜로 코끼리만한 인형을 사서는 로카마두르에게 깜짝 선물로 주려 할 테다. 날이 밝으면 트루이 노인한테 들려 라틴아메리카 관련하여 업데이트를 해주어야 한다. 외출하고, 행사하고, 업데이트 하고, 이런 것들은 수면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였다. 업데이트라니, 이 무슨 표현이란 말인가. 행사하다. 무언가를 하다, 잘하다, 배변하다, 겸하다, 하다라는 패로 가능한 모든 유의 행위들. 하지만 모든 행위의 배후에는 반론의 여지가 남아있는데, 왜냐하면 하다라 함은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해 어디로부터 나오고, 저기가 아니라 여기에 있게끔 무언가를 움직이고, 옆집에 들어가거나 말거나 하기보다는 이쪽 집으로 들어가기를 의미하기에, 그러니까 모든 행동은 결여를 인정하고 아직 행하지 않은 무언가를 납득하는 것으로, 그때 반론은 아무런 말없이 계속되는 결핍·감소·현재의 빈곤으로부터 말미암은 자명함과 마주한다. 행위가 충족이 될 수 있다거나 행위의 총합이 정말로 이름에 걸맞게 하나의 삶과 등가를 이룰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도덕주의자적 망상이다. 차라리 포기하는 편이 날 텐데, 행위의 포기란 행위의 가면이 아니라 그 자체로 반론이기에 그러하다. 올리베이라는 담배에 다시 불을 붙였고, 그는 자신의 이런 최소 행위에 뒤틀린 미소를 지으며, 또 동시에 스스로를 비웃을 뿐이었다. 그에게 표면적인 분석이란 사소할 따름으로, 그런 분석이란 거의 언제나 부주의나 문헌학적 올가미들로 인해 변질되기 마련이었다. 하나 확실한 게 있다면 그것은 바로 명치에 걸린 무게로, 무언가 잘 굴러가지 않으며 또 거의 단 한 번도 제대로 굴러간 적이 없다는 물리적 의혹이었다. 글러가건 말건 아무런 문제도 아니었는데, 애당초 그는 원한을 품은 채 쓸쓸히 방사성 동위원소나 바르틀로메 미트레의 임기에 관한 연구를 한다든지, 아니면 집단적인 거짓말을 거부해 왔다. 만약에 그가 젊어서부터 무언가를 선택했다 하여도, 그것은 자신을 지키고자 하나의 ‘문화’를 쌓으려고 안달이 난 방식은 아니었을 텐데, 왜냐하면 문화란 전형적인 아르헨티나 중산계급의 것으로, 제 몸뚱어리를 국가적 현실이라든지 그 밖의 다른 것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자신이 그러한 현실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공허함으로부터 모면했다고 믿기 위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마도 동창생이었던 트레블러의 정의대로 일종의 체계적 게으름 덕에 바리새인들의 질서 (많은 친구들이 대게 선의로 그 안에서 활동하였으니, 실로 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전례가 있었다.) 속에 들어가는 것으로부터 해방되었는데, 애당초 질서란 종류를 막론하고 질서의 특수화를 통해 문제의 근본을 회피하고, 또 질서를 행함으로써 역설적이게도 가장 아르헨티나다움에 이바지하기 마련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행위나 포기의 문제에다가 아르헨티나 사람이라거나 에스키모인이라는 식의 역사적 문제를 뒤섞는 것도 기만적이고도 안이한 일로 여겼다. 그는 이미 등잔 밑이 어둡다며 쉽게 간과하는 것들을, 객체의 개념 속 주체의 무게에 의혹을 둘 만큼 오래 살았던 것이다. 마가는 매우 드문 여자로, 어떤 유형의 얼굴이 공산주의나 크레타미케네 문명을 짐작하는 데 도움을 주는지, 또 한 사람의 손이 어떻게 생겼는지가 기를란다요나 도스토예프스키를 느낄 수 있는 방식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잊는 법이 없었다. 그런 까닭에 올리베이라는 자신의 혈족이라든지 근엄한 숙부들 사이에서 보낸 어린 시절이, 청소년기의 몇몇 반항적인 사랑이나 툭하면 드는 무기력함이, 자신의 우주관에서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납득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는 중산계급이었고, 포르테뇨고 국립학교였으며, 그리고 이런 사항들은 그냥 그렇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게다가 좋지 못한 습관이 있었는데, 그는 여러 관점들을 극단적으로 위치시키기가 두려운 나머지, 모든 것의 긍정과 부정을 너무 재다 못해 죄다 받아들이고, 저울바늘에서부터 저울판을 바라보려 들었다. 파리에서 모든 것은 부에노스아이레스였으며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모든 것은 파리였다. 맹렬한 사랑 속에서 그는 손실과 망각을 겪고 또 맛보았다. 유해하고 안락하다 못해 반사와 기술이 되기 십상인 태도로, 완벽하게 멍청한 육상선수의 실명이자 중풍환자의 끔찍한 명석함이었다. 이제 사람들은 부랑자clochard와 철학자의 굼뜬 걸음으로 삶을 활보하기 시작하니, 그럴수록 활기찬 행위들이 순수한 대화 본능으로, 진실을 파악하는 대신 더는 기만당하지 않으려는 보다 주의 깊은 의식의 실천으로 소급된다. 세속적 정숙주의, 절도 있는 아타락시아, 주의 깊은 부주의함. 올리베이라에게는 이렇게 졸도하지 않고서 투팍 아마루식 분할을 목도하는 것이 중요할 뿐, 그의 주변에서 날마다 모든 가능한 형태를 띠고서 선언되는 가엾은 자기중심주의(신토불이주의, 교외중심주의, 문화중심주의, 민속중심주의)로의 함몰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열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거룩하신 숙부님들의 역사정치적 설교 말씀이 있던 오후, 몇몇 천국의 그늘 아래에서, 흥분해서는 쾅쾅거리며 “내가 말하려던 게 그거라니까!(¡Se lo digo yo!)”라는 너무도 스페인-이탈리아-아르헨티나적 표현에 처음으로 수줍게나마 반응할 수가 있었다. Glielo dico io! 그건 내가 말한다니까 멍청아! 이 ‘나yo’라는 것을 두고 오라시오는, 이 말엔 무슨 확증해줄 만한 것이라도 있는 걸까? 어른들이 말하는 나에는 무슨 전지전능함이라도 있는 걸까? 생각을 했다. 열다섯 살에 이르러 그는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함을 알 따름이다”를 배웠다. 그리하여 이로 인한 독배는 피치 못할 것으로 여겨졌으니, “내가 말하려던 게 그거라니까”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에게는 바가 아니었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고 나서 그는 문화적으로 상위 형태를 띠는 것들 사이에서, 어떻게 하면 권위와 영향의 무게라든지 좋은 독서에서 비롯된 믿음들이, 앞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내가 말하려던 게 그거라니까”를 정교하게 은닉된 방식으로 생산하는지 확인하며 즐거워하였는데, 심지어 그곳에서는 당사자들조차 자신의 의도를 모른 채 “필자가 항상 믿었던 바”, “내가 무언가 확실히 안다 가정할 경우”, “분명한 것은” 따위의, 결코 반대 관점으로부터 냉정한 평가를 받았을 리 만무한 말들을 늘어놓았다. 인류가 각각의 개별자를 감시하여 톨레랑스·지적 의심·감정적 왕래의 노정에서 너무 멀리 나아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만 같았다. 어느 한 점에 이르러 티눈이, 경직이, 의미가 태어난다. 오 흑과 백이여, 진보와 보수여, 동성애와 이성애여, 구체와 추상이여, 산로렌소나 보카주니어여, 고기와 채소여, 사업과 시여. 이는 이대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왜냐하면 인류는 올리베이라와 같은 유형을 도무지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동생의 편지가 바로 이러한 거절의 표현이었으리라.

     올리베이라는 생각했다. “이 모든 것들에서 문제가 뭐냐면 언제나 영혼의 방랑과 다정함animula vagula blandula으로 끝이 난다는 것이다.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질문과 함께 더는 잠을 잘 수가 없다. 오블로모프여, 무엇을 해야 하는가cosa facciamo? 역사의 위대한 목소리들이 행동을 촉구한다 : Hamlet, revenge! 햄릿이여, 복수를 하자, 아니면 조용히 치펜데일에 앉아 슬리퍼를 신고 따뜻한 불이라도 쬐려 하는가? 모든 일이 있고서도 시리아인은 마르타를 찬양하여 공분을 샀으니, 이는 익히 알려진 바다. 아르주나여, 전쟁을 벌일 셈이냐? 우유부단한 왕이여, 너는 가치들을 부정하지 못한다. 투쟁을 위한 투쟁, 험난한 삶, 생각해 보라, 에피쿠로스주의자 마리우스를, 리차드 힐러리를, 쿄를, 토머스 에드워드 로런스... 행복하여라 선택하는 자들, 선택을 받아들이는 자들, 훌륭한 영웅들, 훌륭한 성인들, 완벽한 현실도피주의자들”.

     그럴 수 있다. 어째서 아닐까? 하지만 그의 관점이 포도를 탐하는 여우의 관점일 수도 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그리고 그에게 일리가 있었을지도 모를 일인데, 하지만 그때의 일리란 거북하고 통탄할만한, 매미에 맞서는 개미의 일리다. 만일 명석함이 무위로 끝이 난다면 그 때의 명석함이란 의뭉스러운 것으로, 무언가 유난히도 악마적인 실명을 가리려 들지 않겠는가? 화약을 품고 뛰어드는 전쟁영웅의 어리석음, 영광을 온 몸에 두른 용사 카브랄, 사실 이것들은 내심 총괄적인 바라보기를 종용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순간 무언가 절대적인 것을 간파하기를, 새벽 세 시 담배가 타들어가는 침대에서, 온 의식 너머로(이는 부사관에게 요구되는 일이 아니다), 두더지보다도 그리 뛰어나지 못할 일상의 혜안이나 사무실의 명석함과 마주하기를.

     그는 이 모든 걸 마가에게 말했는데, 앞서 잠에서 깨어났던 마가는 잠에 겨운 고양이처럼 그에게 붙어 몸을 웅크렸다. 눈을 뜨고서,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당신은 못 할 거야,” 그녀가 말했다. “아무것도 안 하기에 앞서 당신은 생각이 너무 많거든.”

     “행위에는 성찰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원칙으로부터 시작하는 거라고, 이 멍청한 여자야.”

     “원칙에서 출발한다고?” 마가가 말했다. “뭐 그리 복잡해. 당신은 목격자 같아, 박물관에 가서 그림을 구경하는 사람이라고. 뭔 소리냐 하면 박물관에 그림들이, 그리고 당신이 있다는 말이야, 가까우면서도 동시에 멀리. 나는 하나의 그림이고, 로카마두르도 그림이야. 에티엔도 하나의 그림이고, 이 방도 하나의 그림이야. 이 방에 있다 생각하지만 당신은 이곳에 있지 않아. 방을 바라보고 있지만 방에 있지는 않아.”

     “이 아가씨가 아주 사도 도마 뺨치시는군.” 올리베이라가 말했다.

     “어째서 사도 도마야?” 마가가 말했다, “그 직접 봐야지만 믿을 수 있던 멍청이?”

     “그래, 당신 말이 맞아.” 올리베이라는 내심 마가가 제대로 맞추었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그녀는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으며, 지속과 함께 육체를, 삶의 연속을 형성하는 행복한 사람이었다. 방 안에 있고, 함께 살아가고 만지는 모든 것에, 강물 아래 물고기에, 나무 속 잎사귀에, 하늘 속 구름에, 시 속 이미지에, 모든 시민으로서의 권리가 있는 행복한 사람이었다. 물고기, 잎사귀, 구름, 이미지. 바로 이런 것들인데, 다만...

 

(-8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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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yuela : 팔방치기

- 훌리오 코르타사르 지음, vasistas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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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기에서의 처음이 무엇이었느냐면, 우선 피를 뽑고, 심적으로 뚜드려 맞고, 바보 같은 파랑색 여권이 가방 주머니에 잘 있나 확인하고, 호텔 열쇠가 선반 못에 얌전히 걸려있는지를 느껴야만 했다. 두려움, 무지, 찬란한 눈부심. 여기는 그렇게 이름 불리고 또 그에 걸맞기가 요구된다. 도시가 곧 내게 미소를 지을 테고, 이 길을 지나 식물원Jardin des Plantes이 시작된다. 파리, 더러운 거울 옆 클레의 그림이 담긴 엽서. 어느 오후 마가는 세르슈-미디 길에 등장하였고, 이후 통브-이수아르 길가 내 집에 오를 때면 언제나 꽃 한 송이를, 클레나 미로의 엽서를, 그리고 돈이 없을 경우에는 공원에서 플라타너스 나뭇잎 한 장 정성스레 주워 왔다. 당시 나는 새벽 거리에서 철사나 빈 상자를 모았는데, 그것들로 흔들개비라든지 난로 위를 빙빙 도는 장식을, 또는 마가가 색칠을 도와준 무용한 기구들을 만들었다. 우리는 사랑에 빠지지 않았고, 다만 비판적이고 집착 없는 기예로 사랑을 행하였으며, 하지만 그럼에도 끔찍한 침묵에 잠기는 동안 맥주잔 속 거품은 미적지근 무슨 뱃밥 모양 쪼그라들었으며,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바로 이런 게 시간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마가가 몸을 일으켜 의미 없이 방 안을 돌아다닌다. 거울에 비친 제 모습에 감탄을 한다든지, 무슨 사이렌 동상마냥 두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고서 부드러운 눈길로 제 몸을 어루만졌는데, 그런 그녀를 보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나는 끝내 저항하다 못해 그녀를 옆으로 불렀고, 그러면 그녀는 조금씩 내 위로 포개어지더니, 제 육체의 영원성을 마주하고서는, 잠시 그토록 하나 되고 그토록 사랑에 빠졌다가, 그러고는 다시 둘로 나뉘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가급적 로카마두르 이야기는 하지 않았는데, 쾌락이란 이기적인 것으로 그것은 신음과 함께 좁은 이마로 우리를 들이박고, 소금기 가득한 손으로 우리를 붙들었다. 나는 마가의 무질서가 매 순간 발생하는 자연적 조건이라 받아들이는 지경에 이르렀고, 우리는 로카마두르를 떠올리는 것으로부터 데운 면발로 옮겨 갔다가, 와인과 맥주와 레모네이드를 뒤섞었으며, 한달음에 내려가 길 모퉁이 할머니가 굴을 두 접시 까주기를 기다리다, 노게 부인의 조율 안 된 피아노로 슈베르트의 선율이나 바흐의 전주곡을 연주하고, 포기와 베스Porgy and Bess를 참아가면서 소고기 스테이크와 절인 오이를 곁들였다. 우리 생활의 무질서는 다시 말해 화장실의 비데가 자연적이고 완만한 힘에 의해 디스코텍이라든지 답장을 기다리는 파일로 변하는 식의 질서로, 마가에게 실토하기는 싫었으나 그것이 내게는 없어서는 안 될 규율로 보였다. 나는 얼마 안 있어 마가에게는 방법론적 용어로 현실을 제기할 필요가 없음을, 무질서를 찬양하기란 그녀에게 있어 무질서를 성토하는 것만큼이나 분란을 일으키는 일임을 알았다. 그녀에게 무질서란 존재하지 않으며, 나는 그녀가 들고 다니던 가방의 내용물을 확인하는 순간 (레오뮈르 길에 위치한 카페에서, 비가 내리고 우리가 서로를 갈망하기 시작했을 때) 그 사실을 알아챘고, 그런 다음에는 오히려 그를 받아들이고 옹호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내가 세상과 맺는 관계는 대게 불리한 방식으로 이루어진 바, 그렇게 수차례 며칠이고 정리도 안 해 헝클어진 침대에 누워, 지하철 꼬마아이 탓에 로카마두르 생각이 났다며 눈물 흘리는 마가를 본다던지, 알리에노르 다키텐 여공의 초상화를 보고 나서 머리를 빗거나 여공과 닮고 싶어 죽으려는 모습을 바라보면, 문득 내 삶에 이런 것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피곤하기 그지없는 어리석음이었다는 생각에 정신적 트림을 해댔는데, 이는 바로 나 자신이 순수한 변증법적 운동에, 올바른 처신을 대신하여 그릇된 처신에, 부화뇌동하는 정숙함보다는 변변찮은 부정에 머물렀기 그랬으리라. 마가는 머리를 빗고, 머리를 헝클고, 다시 머리를 빗었다. 로카마두르를 생각했고, 후고 볼프의 노래를 몇 곡 (조악하게) 불렀으며, 내게 입을 맞추면서 자기 헤어스타일이 어떤지를 묻고 노란 종이에 그림을 그렸는데, 이 모든 것이 의심할 여지없이 그녀였으며, 반면에 나는 구태여 더러운 침대에 누워 구태여 미지근한 맥주를 마셨으니 이것이 언제나 나이자 나의 삶이었으며, 또 타인들의 삶과 마주한 나의 삶을 동반하는 나였던 셈이다. 하지만 어찌되었건 나는 내가 이렇게 의식 있는 쭉정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퍽이나 자랑스러웠고, 뜨고 지는 달들과 달들 아래, 마가와 로날드와 로카마두르와 클럽과 거리와 내 도덕적 질병들과 그 밖의 고름들과 베르트 트레파와 가끔의 허기와 나를 곤궁에서 벗어나게 도와준 트루이 할아버지가 만들어내는 셀 수 없는 이변들 가운데, 온갖 종류의 음악과 담배와 같잖은 비열함과 거래들이 쏟아지는 수많은 밤 아래, 그저 이 모든 것들의 위나 아래에서, 도무지 나로서는, 그러니까 최소한의 정숙함만 있다면 (정숙함이라니!) 더럽혀진 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또는 통상의 보헤미안들 행세를 하고 싶지가 않았는데, 왜 그런가 하냐면 이런 주머니만한 크기의 혼돈이란 정신의 상위 질서이거나 부패이기 매한가지인 임의의 징표였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마가를 만났고, 본인도 몰랐지만 그녀는 나의 목격자이자 첩자였기에 나는 이 모든 생각에 언제나 거북해 하였고, 또 존재보다는 사유가 내게는 훨씬 더 쉬운 일이며, 짤막한 문장의 에르고ergo가 그닥 에르고나 그와 유사한 무엇도 아니라는 데 짜증이 났는데, 그렇게 우리는 함께 좌안을 걸었고, 마가는 자신이 나의 첩자며 목격자임을 모르는 채로, 내가 엄청나게 다양한 것을, 문학에 정통하였을뿐더러 cool 재즈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봤을 땐 엄청 신비한 것들을 알고 있다며 감탄을 해댔다. 나는 이 모든 것들로 인해 일종의 길항작용으로 그녀와 가까워짐을 느꼈고, 우리는 쇠와 자석의, 수비와 공격의, 벽과 공의 변증법으로 서로를 좋아했다. 짐작하기로 그녀는 내게 환상을 품었던 것 같은데, 아마도 내가 뭇 편견들로부터 치료된 자이거나 아니면 그녀의 편견들에, 좀 더 가볍고 좀 더 시적인 편견들에 가닿는 중이라 생각했던 듯하다. 나는 불안한 만족과 거짓 휴전의 한복판에서, 팔을 뻗어 파리라는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를, 스스로를 둘둘 휘감는 무한의 재료를, 창문에 비치는 다락방과 구름과 대기의 마그마를 만져보았다. 바야흐로 무질서는 없으며, 바야흐로 세상은 무언가 단단한 돌이 되어 쌓여만 갔으며, 경첩을 중심으로 돌도 도는 놀이장치로, 거리와 나무와 이름과 나날이 뒤섞인 타래로 변해갔다. 그곳에는 탈출구가 되어줄 무질서가 존재치 않으며, 그저 불결과 비참이, 맥주 찌꺼기가 남은 컵들과 구석에 웅크린 양말이, 머리카락과 섹스를 풍기는 침대만이, 그리고 투명하고도 얇은 손을 뻗어 내 근육을 더듬고 공허 가득한 각성상태로부터 잠시나마 나를 벗어나게 할 애무로 애태우는 한 여인만이 있을 뿐이었다. 너무도 늦어 버린 게, 언제나 그렇하듯, 그토록 많은 사랑을 나누었음에도 정작 행복은 다른 것이어야 했기에, 이곳에서의 행복과 쾌락보다는 더욱 슬픈 무엇이어야만, 섬과 같은 분위기이거나 일각수여야만, 부동 속 끊임없는 추락이어야만 했다. 마가는 알지 못했다, 나의 입맞춤이 그녀 너머로 열리는 두 눈과도 같은 것임을, 내가 이탈한 자 되어 나아가고 세상의 다른 형상으로 화하고 있음을, 어지러움에 비틀거리는 항해사로 검은 뱃머리에서 물과 시간을 가르며 항해함을.

     이 50년대의 나날에 나는, 무언과 발생했을 법한 개념과 마가 사이에 감금되었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마가의 세계와 로카마두르의 세계에 반기를 들기란 어리석은 짓으로, 혹여 독립을 한들 그 즉시 더는 자유롭다라고 느끼지 못하게 될 거라고, 온 세상이 내게 말을 걸어 왔다. 나는 누구와도 비교가 불가능한 위선자로서 내 살갗과 다리가 감시당하는 일에, 내가 마가를 누리는 방식은 물론이고 목책 너머 키에르케고르를 읽으려는 울타리 속 앵무새로서의 나의 시도들이 정탐 당하고 있음에 곤혹스러웠는데, 특히나 마가 자신이 내 목격자라는 의식이 없을 뿐 아니라, 반대로 나를 유아독존의 존재로 믿어 의심치 않으리라는 것이 내게는 무엇보다도 성가신 일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사실이 아니다. 정말 화가 나는 건, 결국 내가 마가의 세계에 감금되었다 느끼는 요 며칠만큼이나 자유에 근접하기란 앞으로 불가능할 것이며, 해방에 골몰하려는 행위 자체가 기실 패배를 인정하는 일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정반합의 구타들로는, 마니교적 스크린샷이나 멍청하고도 성마른 이분법으로는, 마가가 나를 끌고서 로카마두르를 보러 가던 몽파르나스 역 계단들로 걸음이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힘들었다. 어째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질서·무질서·자유 따위의 개념들을 세운다던지 설명을 하지 않고는 직성이 풀리지 않으며, 로카마두를 그냥 코차밤바 길 안뜰에서 제라늄 화분을 나눠주는 사람처럼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아마도 올리브 정원이나 똥통의 문고리를 찾기 위해 더욱 더 어리석음에 빠져들어야 했을지 모른다. 그 순간 나를 놀래킨 건, 바로 마가가 자기 아들을 로카마두르라고 부르는 지점까지 자신의 판타지를 이어나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 우리가 구사회에서 논리를 찾아내는 데 진력이 났던 반면, 마가는 그저 아들 이름이 아버지와 똑같으며, 이제 아버지가 없으니 아이를 로카마두르라 부르는 것이며, 아이를 키우기에는 시골로 보내 유모en nourrice를 붙이는 게 낫다라는 말만을 할 뿐이었다. 로카마두르에 대해 아무런 이야기도 않고 몇 주고 보낸 적이 있는데, 그 시기는 언제나 그녀가 리더lieder 가수가 되고자 할 때와 일치하였다. 그러면 우리를 방문한 카우보이cowboy 같은 붉은 색 머리로 피아노 앞에 앉았으며, 마가는 목청껏 휴고 올프의 노래를 불렀으니, 그럴 때마다 이웃방에서는, 플라스틱 구슬을 꿰매던 노게 부인이, 세바스토폴 대로에 내다 팔려던 그녀의 몸이 그 우악스러운 목소리에 벌벌 떨는 것이었다. 우리는 마가가 슈만을 부를 때를 좋아했는데, 그러나 모든 건 그날 저녁에 달의 상태나 우리가 무엇을 하려 했는지, 아니면 로카마두르가 어떠한지에 달렸으므로, 어쩌다 마가가 로카마두를 떠올리게 되면 노래는 바로 나락으로 떨어졌고, 그러면 로날도가 홀로 피아노에 앉아,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비밥bebop에 관한 생각을 다듬거나 감미로운 블루스blues로 우리 모두를 끝장내 버렸다.

     나는 적어도 오늘만큼은 로카마두르에 관해서는 쓰고 싶지가 않은데, 아마도 나를 중심으로부터 분리시키려는 모든 것들을 떨쳐내고, 좀 더 나 자신에게 가까워지는 일이 너무도 절실했기 때문이리라. 나는 언제나 내가 뭔 말을 하든 중심이라는 것에 대해 아무런 확신도 없이 운을 떼곤 하는데, 결국 우리 서양인들의 삶을 질서정연해 보이게끔 하는 기하학 함정에 빠져서는 축이라든지 중심, 존재 이유raison d’être, 옴파로스Omphlos, 인도유럽적 동경 어린 이름들에 자리를 내주고 만다. 내가 그토록 묘사해 보려던 존재는 물론이거니와 나 자신이 마른 나뭇잎처럼 나부끼는 파리마저도, 중심축으로 작용하는 두려움과 자루 달린 만남이 배후에서 박동치지 않는 한, 그것들이 우리에게 드러나기란 요원한 일이다. 얼마나 많은 단어들이, 얼마나 많은 명명들이 조화롭지 못한 하나의 혼란을 위하는가. 나는 때때로 어리석음이란 곧 삼각형을 이름하며, 팔 곱하기 팔은 개새끼이거나 광기임을 납득하다. 마가에게 안긴 채 나는 생각한다, 이처럼 성운을 구체화 시키거나 빵 속으로 인형을 만드는 일에는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그것은 결코 쓰여지지 않을 소설을 쓴다거나 인민을 구할 이념들을 목숨 받쳐 지키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라고. 시계 속 진자가 매 순간 오고감을 완료하고 다시 나를 안정된 범주들 속으로, 의미 없는 인형과 초월적 소설과 영웅적 죽음으로 편입시킨다. 그것들을 나는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으로 줄 세운다. 인형, 소설, 영웅주의. 나는 오르테가와 셸러가 그토록 훌륭하게 탐구해 낸 가치들의 위계를 생각해 본다. 미학적인 것, 윤리적인 것, 종교적인 것. 종교적인 것, 미학적인 것, 윤리적인 것. 윤리적인 것, 종교적인 것, 미학적인 것. 인형, 소설. 죽음, 인형. 마가의 혀가 나를 간지럽힌다. 로카마두르, 미학, 인형, 마가. 혀, 간지럼, 미학.

 

 

(-116장)

Posted by vasist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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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yuela : 팔방치기

- 훌리오 코르타사르 지음, vasistas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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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법

 

각자의 방식에 따라 이 책은 복수의 책이 될 텐데, 무엇보다도 두 권의 책으로 볼 수가 있겠다. 독자에게는 다음 두 방식 중 하나를 선택하여 읽기를 권한다 :

제1의 책은 일반적 방식으로 읽어나가, 결말이라는 단어와 등가인 세 개의 별이 찬란하게 발치를 비추는 56장에서 끝이 난다.

제2의 책은 73장에서 시작하고 각 장 발치에 적힌 순서를 따라 읽는다. 착각하거나 까먹을 경우 다음 목록을 참조 바란다 :

 

73 – 1 – 2 – 116 – 3 – 84 – 4 – 71 – 5 – 81 – 74 – 6 – 7 – 8 – 93 – 68 – 9 – 104 – 10 – 65 – 11 – 136 – 12 – 106 – 13 – 115 – 14 – 114 – 117 – 15 – 120 – 16 – 137 – 17 – 97 – 18 – 153 – 19 – 90 – 20 – 126 – 21 – 79 – 22 – 62 – 23 – 124 – 128 – 24 – 134 – 25 – 141 – 60 – 26 – 109 – 27 – 28 – 130 – 151 – 152 – 143 – 100 – 76 – 101 – 144 – 92 – 103 – 108 – 64 – 155 – 123 – 145 – 122 – 112 – 154 – 85 – 150 – 95 – 146 – 29 – 107 – 113 – 30 – 57 – 70 – 147 – 31 – 32 – 132 – 61 – 33 – 67 – 83 – 142 – 34 – 87 – 105 – 96 – 94 – 91 – 82 – 99 – 35 – 121 – 36 – 37 – 98 – 38 – 39 – 86 – 78 – 40 – 59 – 41 – 148 – 42 – 75 – 43 – 125 – 44 – 102 – 45 – 80 – 46 – 47 – 110 – 48 – 111 – 49 – 118 – 50 – 119 – 51 – 69 – 52 – 89 – 53 – 66 – 149 – 54 – 129 – 139 – 133 – 140 – 138 – 127 – 56 – 135 – 63 – 88 – 72 – 77 – 131 – 58 – 131

 

몇 장인지 빨리 확인할 수 있게끔 모든 지면 상단부에는 각 장에 해당하는 숫자를 표기해 두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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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에 각별히 도움이 되고, 일반 풍습 개혁에 기여한다는 희망에 고무되어 이번 책에서 격언·조언·계율을 한데 묶으니, 이는 곧 연령과 상태 및 조건을 막론하고 모든 인간의 세속적이고 영적인 행복은 물론이오 번영과 질서에 매우 밀접한 보편 윤리의 기반이 되는 바, 우리가 사는 문명화된 기독교 국가뿐 아니라, 지구에서 가장 사색적이고 심오한 철학자들이 강구하고자 했던 그 어떤 나라나 정부에서도 통용될지어다.

 

성령과 보편윤리, 구약과 신약에서 인용. 수도원장 마르티니가 토스카나어로 각주를 달고 집필. 본 궁정의 산 카예타노 수도회 소속 성직자가 인가를 받아 스페인어로 번역.

아스나르, 1797년 마드리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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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한시간이올때마다, 그러니까다시말해한창의가을에는언제나, 괴상야릇한종류의생각들로미쳐버리는데, 이를테면한마리제비가되어이곳을떠나따뜻한나라로간다든지, 아니면개미로변해동굴에틀어박혀여름내내비축했던식량을먹는다든지, 또아니면동물원살모사로둔갑해추위에몸이굳지않도록난방이잘되는유리장안에들어가돈없는인간신세를면하고싶은데, 왜냐하면그들은차마비싸옷을사입을수도없거니와, 몸을녹일등유도,장작도,석유도없으며돈도없는데, 그도그럴것이그런사람들은급전이생기면아무밤무도회장에들어가, 정말로몸을데워줄질좋은양주하나사려들테고, 물론그렇다하더라도과음을해서는안되겠는데, 왜냐하면과음은악덕의시작이고각자의도덕적결함과마찬가지로육체를손상시키기때문이며, 모든의미에서좋은행실이결여되어숙명적비탈길을따라내려갈때에는 이미그누구도그무엇도인간폐기물의엄청난쓰레기통속에서끝장이나는그들을구하지못하고, 또결코그들에게손을내밀어그들이구르는더러운진창속에서꺼내주지않으며, 설령한마리독수리가되어선들젊어서는높은산위로날아정상을넘나들수있다하여도, 늙어서는도덕적엔진이결여되어수직으로추락하는폭격기마냥아래로떨어지고야만다. 부디지금내가쓰고있는이글이누군가에게는조금이라도쓸모가있어자신의행실을들여다볼수있기를바라며, 또너무늦었다면서이미모든것이자신의잘못으로망했다고후회하지않기를바랄지어다!

 

세사르 브루토, 《만일 내가 지금의 내가 아니라면 되고 싶은 것》(세인트 버나드 견 장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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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 편으로부터

 

 

한 나라를 대표하도록 강요받기보다 인간을 죽이는 일은 없습니다.

Rien ne vous tue un homme comme d’être obligé de représenter un pays.

자크 바셰, 앙드레 브루통에게 보내는 편지.

 

1

 

 

     마가를 만날 수 있을까? 이미 수차례, 센 거리를 지나 케-드-콩티로 뻗은 아치형 통로 밖으로 나올 때면, 올리브와 재가 뒤섞인 듯한 빛이 강물 위를 부유할 뿐인데도 형태들은 드러나고, 그러면 퐁-데-자르에 새겨진 그녀의 가느다란 실루엣이, 어떨 때에는 이쪽에서 저쪽으로 걸어오며, 또 어떨 때에는 철책 난간에 붙어 있다든지 물 위로 몸을 기울였다. 그러고는 너무도 당연히 거리를 건너 계단을 딛고 다리의 잘록한 허리로 들어서면, 마가는 다가오는 내게 조금도 놀라지 않고 미소를 짓는데, 그런 그녀는 나와 마찬가지로 우리 삶에서 우연한 만남이란 가장 우연적이지 못하며, 또 정확히 약속 잡는 사람들이란 줄이 그어진 종이 없이는 글을 못 쓴다던지 치약을 밑에서부터 짜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과 진배없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다리에 없을 것이다. 가느다랗고 투명한 얼굴로 마레의 게토 구역 오랜 현관들 사이에 모습을 비추거나 감자튀김 파는 아줌마와 이야기를 하는 중일도, 아니면 세바스토폴 대로에서 따끈한 소시지를 먹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나는 다리에 올랐고, 마가는 없었다. 마가는 지금 나의 도정 위에 있지 않은데, 우리가 비록 서로의 집을, 그러니까 파리의 가짜 학생들이 거주하는 저마다의 구덩이며 값싼 테두리 싸구려 종이 위에 그려진 브라크·기를란다요·막스 에른스트 풍 창문을 열어젖히는 서로의 우편엽서를 알고 있음에도, 상대의 집에서 서로를 찾을 생각은 안 했다. 우리는 다리에서, 카페 테라스에서, 영화관에서 마주치기를, 라틴 지구 어느 건물 안뜰에 함께 웅크린 채 고양이를 바라보기를 원했다. 서로를 찾지 않고서 걸었고, 그럼에도 서로를 만나고자 걸음을 알았다. 마가, 너를 닮은 여자를 맞닥뜨릴 때마다 귀청 터질 듯한 침묵이 찾아들었고, 날카롭고 유리 같은 휴식은 결국 축 젖어 접힌 우산처럼 슬픈 추락으로 끝이 났다. 우산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마가, 넌 우리가 몽수리 공원 벼랑, 얼어붙은 3월 일몰에 공양한 낡은 우산을 기억할지도 모른다. 우산을 버린 까닭은 네가 콩코르드 광장에서 그것을 발견했을 당시 이미 좀 망가진 상태이기도 했거니와 또 이미 너무 많이 사용하였기에, 특히나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사람들의 옆구리 사이로 언제나 굼뜨고 얼빠져서는 알록달록한 새들이라도 생각하는 양 멍하니, 차 지붕에서 파리 두 마리가 그려내는 작은 그림이라도 생각하며 들이밀기엔 무리가 있기에, 그래서 너는 그날 오후 소나기가 쏟아질 때 공원에 들어가 보란 듯이 우산을 펼치고 싶었으나 결국 손에 쥔 것이라고는 재앙과도 같은 시린 섬광이었으며 먹구름이었으며 망가진 우산살의 번쩍임 사이로 떨어지는 찢어진 천 쪼가리였기에, 그래서 우리는 온 몸이 젖으면서도 미친년놈들처럼 웃어댔고, 광장의 우산이라면 대저 공원에서 숨을 다해야 하는 법이라며 그것이 쓰레기통이나 하수구의 고결치 못한 순환으로 들어가서는 아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우산을 돌돌 말아서는 너와 함께 공원 높은 곳으로 향했고, 내가 철길 위 작은 다리 옆에서 온 힘을 다해 우산을 아래쪽 축축한 잔디 깊숙이 내던지는 사이 너는 발키리의 저주로 오인할지도 모를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댔다. 그리고 우산은, 굴복을 하고 만 배처럼, 계곡 깊이 초록빛 물에, 격렬한 초록빛 물에, 겨울보다는 여름에 더 불충한 바다에la mer qui est plus félonesse en été qu’en hiver, 신의 없는 일렁임에, 마가, 우리가 이렇게 주구장창 열거하는 것들을 따라 주앵빌이나 공원의 연인들처럼, 젖은 나무들이나 형편없는 헝가리 영화 속 배우들이 서로를 껴안은 것처럼 가라앉았다. 그리고 풀들이 무성한 곳에 멈춰 섰는데, 그것은 작고 검은 것이 짓밟힌 벌레와도 같았다. 더는 미동도 없고, 우산의 용수철들에는 더는 예전과 같은 탄력이 보이질 않았다. 기한이 끝난. 끝이 난. 오 마가, 우린 정말이지 만족이라곤 몰랐다.

     퐁-데-자르에서 나는 무엇을 하려 했던 걸까? 12월 어느 목요일, 센 강 우안을 걷다가 롬바르 거리에서, 레오니 부인이 손금을 보고는 곧 여행과 놀라움이 있을 거라 말한 카페에서, 아마도 와인을 마시려 했던 것 같다. 나는 부인에게 네 손금은 보일 생각도 않았는데, 그건 레오니 부인이 네 손금을 읽고서는 나에 관한 어떤 진실을 알지는 않을까 두려운 마음에서였다. 왜냐하면 너는 언제나 끔찍한 거울이었으므로, 무시무시한 반복기계였던 너이기에,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던 건, 내가 네 앞에서 서서 노란 꽃다발을 손에 들고 너는 초록색 양초 두 개를 받드는 일일지도, 시간이 우리 얼굴에 단념과 작별과 지하철 티켓을 비로 불어내는 것일지도 모르기에. 그래서 마가, 나는 결코 레오니 부인에게 너와 함께 가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는, 아 물론 네가 말해주었던 것인데, 너는 베르뇌이 거리의 작은 서점에 들어가는 걸 내가 모르기를 바랐으며, 그곳의 주인은 등이 굽은 노인으로 그는 수천 장의 기록카드를 만들고 사료나 문헌 관련해서는 알 수 있는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너는 그곳에서 고양이랑 놀았는데, 노인은 아무런 질문도 없이 너를 받아주었고, 가끔 네가 서재 위켠의 책들에 손을 뻗어주는 것만으로도 더할 나위가 없었다. 너는 검은색 커다란 배수관 난로에 몸을 데우곤 했는데, 그렇게 난로 옆에 있으려 한다는 사실을 내가 알기를 원치 않았다. 이 모든 것을 제 때에 말을 했으면 좋았을 것을, 그러나 무언가의 때를 짚기란 쉬운 일이 아니며, 심지어 다리에 팔꿈치를 괸 지금도, 재강 빛깔로 깨끗이 반짝이는 거대한 바퀴벌레마냥 아름답기 그지없는 한 척 거룻배가 지나가는 걸 보고, 뱃머릿줄에 옷을 걸고서 하얀 앞치마를 두른 여인이 헨젤과 그레텔 커튼이 달린 초록색 창가에 있는 것을 바라보며, 그러면서도 마가, 롬바르 거리에 가려면 생 미셸과 샹주 다리를 건너는 게 난데 이렇게 에둘러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자문할 따름이다. 하지만 수차례 그랬듯 네가 이날 밤에도 그 도정 위에 있었더라면, 이런 우회에도 나름 의미가 있음을 알았을 텐데, 그런데 지금은 실패를 두고 배회라 부르며 값을 낮추려고만 든다. 또 정작 문제는, 패딩을 목까지 올려 입은 다음, 부두를 따라 샤틀레까지 늘어선 가게들을 지나면서도, 생 자크 탑의 자줏빛 그늘 아래를 걸으면서도, 결국 너를 만나지 못 하였다는 생각과 레오니 부인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는 것이다.

     나는 안다, 언젠가 내가 파리에 왔으며 내게는 빌려온 삶을 살 시간이 있었음을, 다른 사람들이 행하는 바를 행하고 다른 사람들이 보는 바를 보고 있음을. 나는 안다, 네가 셰르슈-미디 길에 위치한 카페에서 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음을. 그날 오후 모든 것은 악화일로를 걸었고, 이는 내 고향 아르헨티나에서의 습관 탓인 바, 나는 계속 길을 건너면서도 기억도 나지 않는 거리들의 흐리멍덩한 진열창 속 의미 없는 것들을 도무지 들여다 볼 엄두를 못 내었다. 그러하기에 나는 떨떠름히 네 뒤를 쫓으면서 네가 참으로 뻔뻔하고도 못 배운 사람이라 생각할 뿐이었는데, 너는 마침내 좀체 피곤하지 않아 피곤한 지경에 이르러서는, 나와 함께 불-미슈 카페에 자리를 잡았고, 그러고는 갑자기, 두 개의 쿠루아상 사이에서, 네 인생의 커다란 부분을 내게 들려주었다.

     어떻게 그토록 거짓 같아 보이는 것을 진실이라 생각할 수 있을까, 무슨 피가리라도 되는 마냥 저녁 제비꽃이, 자색의 얼굴들이, 구석구석의 허기와 구타가 함께하는 듯했다. 나중에서야 나는 너를 믿었고, 나중에서야 일리가 있었으며, 네 가슴에 잠들던 나의 손을 바라보며 레오니 부인은 너와 거의 같은 말을 했다. “그 여자는 어딘가 아픈 데가 있어요. 항상 아파해요. 성격은 매우 유쾌하고 노란색을 좋아해요. 새는 구관조예요. 시간은 밤이고 다리는 퐁-데-자르고.” (재강 빛깔의 거룻배, 마가, 그런데 어째서 우린 아직 시간이 있었는데도 그것을 타 볼 생각은 안 했던 걸까.)

     그리고 생각해 봐야할 게, 이제 막 우리가 알아갈 무렵, 삶은 이미 이별에 필요한 것들을 면밀히 꾀하였다. 숨길 줄 모르는 너였기에, 나는 얼마 안 가 알아차렸다, 내가 바라는 대로 너를 보려면 우선 두 눈을 감아야 한다는 걸, 그러면 먼저 (벨벳 젤리 안에서 움직이는) 노란 별 같은 것들이 보이고, 그 다음으로는 감정과 시간이 붉게 튀어 오르며, 그 후 천천히 마가의 세계에 진입하는데, 그 세계는 곧 우둔과 혼돈이며, 그럼에도 또한 클레거미와 미로서커스와 비에이라 다 실바잿빛거울들이 서명을 한 양치식물이기도 하였으며, 체스에서의 룩이 비숍처럼 움직이고 룩이 나이트처럼, 또 너 자신이 나이트처럼 움직이던 세계였다. 그리고 당시 우리는 무성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가곤 했는데, 내게는 그것이 문화적 차원의 일이었던 반면, 정확하지는 않지만 가엽게도 너는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만들어진 이 노란 경련성 지직거림에 대해, 죽은 자들이 줄이 가는 감광유제 속에서 달리는 구조에 대한 아무런 이해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갑자기 해럴드 로이드가 등장하면 너는 졸음의 물기를 털어내고는 결국 이 모든 게, 파브스트며 프리츠 랑이며 다 좋다며 납득하였다. 완성에 대한 너의 그 집착이라든지 네가 신던 헤진 신발에, 그리고 용납할 것을 용납하지 않는 태도에 조금은 질릴 때도 있었다. 우리는 오데옹 사거리에서 햄버거를 먹었고, 자전거를 타고 몽파르나스에, 어떤 호텔이든 베개든 가리지 않고 함께했다. 어떨 때는 포르트-도를레앙까지도 갔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는 자정 무렵에 눈먼 견자, 오 그 자극적 역설의 존재와 이야기를 나누고자 구사회 멤버들이 모이던 주르당 대로 너머를, 그 황폐한 지역들을 더욱 잘 알게 되었다. 거리에 자전거를 두고 우리는 조금씩 더 깊이 들어갔으며, 또 그곳은 파리에서 몇 안 되게 지상보다는 하늘이 가치 있는 곳이기에 가끔은 걸음을 멈추고서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우리는 쓰레기 가득한 곳에 앉아 잠시 담배를 피웠고, 마가는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거나 제대로 구성도 안 된 멜로디를, 숨이나 기억을 따라 띄엄띄엄 단조롭고도 같잖은 노래를 흥얼거렸다. 나는 그때를 틈타 쓸모없는 것들을 생각하였는데, 이는 몇 년 전 어느 병원에서 처음 고안한 방법으로, 해보면 해볼수록 더는 없어서는 안 될 풍요를 내게 안겨주었다. 각고의 노력을 들여 부수적인 이미지들을 그러모으고 냄새와 얼굴들을 떠올리면, 1940년에 올라바리아에서 신었던 갈색 구두를 무로부터 추출해낼 수 있었다. 신발의 뒤축은 고무였고 밑바닥은 매우 얇았으며, 비가 오면 물이 영혼까지 차 들었다. 기억의 손에 들린 한 켤레 구두만 있으면 나머지는 알아서 따라왔다 : 이를테면 마누엘라 아줌마의 얼굴이라든지, 또는 시인 에르네스토 모로니 같은. 하지만 나는 그런 것들의 경우 곧장 쳐내어 버렸는데, 왜냐하면 이 게임은 오직 어떤 의미도 없는 것, 보잘 것 없는 것, 이미 사라진 것들을 수복하는 데에 그 의의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기억해낼 수 없음에 전율하면서, 유예를 늘리려는 애벌레에 잠식당하며, 바보같이 시간에 입맞추려 들다가, 결국엔 구두 옆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엄마에게 받은 작은 차통을 보게 된다. 그리고 티스푼이, 쥐잡이 스푼이 나타나, 시끄럽게 거품을 토해내는 물잔 속에서 검은 쥐들이 산 채로 타들어간다. 이렇게 기억은 모든 것을 포괄하기에, 그래서 복수의 알베르틴이라든지 심장이나 콩팥의 거룩한 나날만을 간직하는 게 아님을 확신하고서, 나는 어떻게든 플로레스타의 내 책상 속 물건들을, 기억도 가물가물한 게크렙텐이라는 여자아이의 얼굴을, 5학년 시절 필통에 들어 있던 숟가락 모양의 둥근 펜촉 만년필 개수를 복구해 보려 하였고, 그러다 결국에는 전율어린 절망에 다다랐는데(결코 숟가락 만년필을 떠올릴 수가 없었는데, 특별 분할된 필통에 들었던 것은 알아도 그것이 몇 개였다거나 아니면 두 개나 여섯 개였을 때가 정확히 언제였는지를 특정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 마가는 내게 입을 맞추고는 담배 연기와 함께 따뜻한 입김을 얼굴로 뿜어내었고, 나는 그제야 정신이 들어 그녀와 함께 웃음을 터뜨리고, 우리는 다시 막대한 쓰레기 더미 사이를 걸어 클럽의 회원들을 보러 나섰다. 나는 그때 이미 알고 말았다. 탐구가 곧 나의 기질임을, 목적도 없이 밤을 배회하는 자들의 상징이자 나침반 파괴자들의 이유임을. 마가와 함께 우리는 진이 빠질 때까지 파타피직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녀 또한 계속해서 (우리 만남은 물론이고 성냥의 인처럼 여러 어두운 물질이 그러하듯) 예외적인 일에 빠져들거나 인간 아닌 규격에 갇혀 있는 자신을 보았고, 또 그럼에도 타인을 깔보거나 우리 자신을 염가방출용 말도로르라던가 특권인양 방황하는 멜모트로 여기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 역시 반딧불이라 해서, 아 물론 이 빛의 벌레에게 의식이란 게 있다면 매번 제 배가 반짝이기만 해도 특권인양 가려움을 느꼈을 테지만, 여하간 자신이 이런 서커스 판의 가장 경이로운 현상 중 하나라 해서 그런 반박불가의 사실로부터 무슨 대단한 만족을 얻는다고 보지는 않았다. 마가도 이런 사실 같지 않은 상황들을 좋아했는데, 자기 삶에서 법칙들이라는 것이 도무지 제 기능을 못하는 탓에 그녀는 언제나 앞선 상황들에 틀어박히려 하였다. 그녀는 다리를 건너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무너지게 한다거나, 막 5백만에 당첨된 복권을 진열창에서 봤던 것을 떠올리며 고래고래 울 수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내 경우에는 이미 소소하게 일어나는 예외적 일들에 익숙했으므로, 음반을 가지러 어두운 방에 들어갔다가 앨범 등에 잠든 거대 지네의 몸통이 살아 요동치는 것을 손바닥으로 느낀들, 그것이 너무 끔찍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밖에도 담뱃갑 속에서 회색이나 초록색 거대 솜털을 발견한다던지, 또는 기관차의 기적소리가 정확한 순간 박자가 맞아 루트비히 반의 협주곡 한 대목에 공공연히ex officio 합쳐지는 것을 듣는다던지, 아니면 메디치 길 공중변소pissotière에서 한 남자가, 열심히 소변을 보다 못해 제 구역에서 갈라져 내 쪽을 향해 자신이 손으로 받치고 있는 그 거국적 귀물을, 믿기 어려운 색깔과 규모를 자랑하는 제 신체의 일부를 보여주는 순간, 바로 이 사람이 24시간 전 지리학회장salle de geographie에서, 토템과 금기를 주제로 강연을 하며 청중에게 자기가 손에 귀중하게 쥔 것들을, 상아로 된 지팡이며 칠현금새며 제례화폐며 주술석이며 불가사리를, 또 말린 생선이나 후궁들 사진 및 사냥봉헌물이라든지 방부처리 된 거대 투구벌레들을 보여줘서는, 그리하여 피치 못하고 자리에 있던 부인들을 무서운 희열로 벌벌 떨게 만들었던 사람과 (사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동일인물임을 깨닫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지금이면 분명 벨빌이나 팡탱을 걸으며 붉은 색 천 쪼가리를 찾고자 도로에 눈을 붙이고 다닐 마가에 대해, 자신의 죄를 사하여줄 그 용서와 감면의 신호를 찾지 못할 경우, 무언가 끔찍한 일이 자신에게 벌어질 거란 생각에 밤을 새서라도 쓰레기통을 뒤질 그녀에 대해 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그녀의 기질을 아는 까닭은 나 또한 그런 징조를 믿는 사람이며, 종종 나 역시 붉은 조각을 찾아야만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무언가를 떨어트리면 그게 무엇이 됐던 바로 주워야만 했는데, 그렇지 않으면 나보다는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정확히는 떨어진 물건과 초성이 같은 사람에게 불행이 닥쳐왔다. 최악은, 그렇게 무언가 내게서 땅으로 떨어지면 나는 도무지 가만히 있지를 못하였고, 혹여 다른 사람이 주워준들 저주가 일어나기는 마찬가지기에 그걸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따라서 나는 여러 번 미친놈 취급을 받았고, 또 실제 떨어트린 연필이나 종이쪼가리를 주우려 달려들 때는 미친놈이었던 바, 일례로 언젠가 밤에 스크리브 거리에 있는 호화 식당에서, 질서정연한 부부들은 물론이고 은빛 여우를 두른 창녀들과 사업과 양반들이 득실한 곳에서 설탕 덩어리를 찾으려던 적이 있다. 로날드랑 에티엔이 함께 있었는데, 나는 설탕 조각을 떨어트렸고, 그것은 멀리 떨어진 탁자 아래까지 굴러가더니 멈추어 섰다. 우선 나는 어떤 형태로 조각이 멀리 날아가 버렸는지에 주목하였는데, 일반적으로 설탕 덩어리는 명백한 평행육면체인 탓에 땅에 닫자마자 꼼작 않아야 마땅했다. 하지만 나프탈렌 공이라도 된 양 날아간 조각에 나는 더욱 겁이 났고, 실제로 누군가 내게서 그것을 끄집어냈다고 믿어버릴 지경이었다. 그런 나를 익히 알던 로날드는 설탕 덩어리가 굴러가 멈춘 곳을 쳐다보더니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로 인해 두렵다 못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종업원은 내가 무슨 귀중한 파커나 의치라도 흘린 줄 알고 왔는데, 실상 그런 호의는 나를 더욱 난처하게 만들 뿐으로, 그래서 나는 무언가 중대한 사안으로 여기는 (이성적) 생각과 함께 호기심으로 가득한 사람들의 구두 사이로, 아무런 허락도 구하지 않고서는 바닥에 엎드려 설탕조작을 찾기 시작했다. 식탁에는 빨간 머리의 뚱뚱한 여자와 조금 더 뚱뚱한들 피장파장인 갈보 계집이 하나 있었고, 또 두 명의 사업가나 그 비슷한 작자들이 있었다. 설탕 조각은 눈에 보이지 않았는데, 그래도 나는 분명 그것이 (암탉들처럼 불안불안 움직여대는) 구두 사이로 튀어나가는 것을 보았다. 설상가상으로 바닥에는 과도한 사용으로 구역질이 나는 것이 양탄자랍시고 깔려 있었는데, 그 털들 사이로 숨어들어갔는지 설탕은 찾으려야 찾을 수가 없었다. 예의 종업원도 식탁 반대편 쪽에 엎드려, 그렇게 우리는 암탉들 사이로 움직이는 두 마리 네발짐승이 되었고, 암탉들은 저 위에서 미친년들처럼 꼬꼬댁거리기 시작했다. 여전히 파커나 루이 금화를 잃어버렸다고 믿던 종업원은 식탁 아래에서 나화 함께 일종의 거대한 친숙함과 어둠 속에 놓여, 내가 찾으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었는데, 내 대답을 들은 그는 헤어스프레이를 뿌리기 전과도 같은 얼굴을 하였고, 그럼에도 나는 웃을 마음이 들기는커녕 두려움에 위장이 콱 막혀버렸으며(종업원은 화가 나서 몸을 일으켰다), 결국에는 정말 절망에 빠져서는 여편네들의 신발을 잡아채며 혹시나 설탕이 둥근 구두 바닥 아래 웅크려 있지는 않나 찾아보는데, 암탉들은 울어대고 사업가-수탉들은 내 등을 쪼기 시작했고, 또 로날드와 에티엔의 폭소를 터뜨리는 동안 다른 식탁으로 나는 자리를 옮기었다가, 마침내 제2공화국풍 탁자 다리 뒤에 숨겨진 설탕을 발견하였다. 모두들 분노를 터뜨렸는데, 급기야 나는 손에 쥔 설탕이 피부에서 분출된 땀에 어떻게 녹아 드는지, 얼마나 메스껍게 해체되어 일종의 끈적거리는 징벌이 되었는지, 이러한 일이 얼마나 일상다반사인지를 실감하고야 말았다.

 

 

(-2장)

Posted by vasist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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