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22

떠들기 2019. 11. 22. 16:07

잠이 안 와서 어떻게 하면 좀 더 안정적이고 최소한의 시간만 투자하며 돈을 벌 수 있을까 궁리해 보았다. 평생 자립을 무엇보다도 우선시했기에 지금 하는 일도 분명 나쁘지 않다. 일주일 평균 20시간 정도 일하면서 주도권이 내게 있고 남과 부딪힘이 적으면서 나름 내 딴에는 적지 않은 돈을 번다. 하지만 그 외 대부분의 시간과 돈을 내 작업에 투자하여 저금이라는 게 없으며 근본적으로 일이 언제 줄고 늘것인지를 내가 정할 수 없고, 줄었을 경우 자동으로 늘지 않아 억지로 알리고 홍보해야 한다. 단 하나의 문제가 바로 항상성인데, 굳이 나를 알리지 않아도 한 사람이 떠나면 한 사람이 알아서 와 주면 좋을 텐데, 그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것 같고, 하지만 나는 나를 더는 알리기가 싫고, 아무리 궁리해도 더 쉬운 일이 보이지 않는다. 2년 정도 미친듯이 일하고 평생 놀고 먹을 게 뭐가 있을까 찾다가 원양어선 정보까지 알아보았는데, 지금보다 소득이 높다고 확신할 수도 없고 근무시간도 많고 조건도 열악했으며, 주식을 해볼까 좀 물어보니 나로서는 턱도 없다. 오캄포나 릴케의 여러 후작 및 백작 부인들 같은 사람이 내게도 있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요원한 일이고. 평생 돈에 묶이지 않고 살고 불편함을 몰랐는데 얽매인 것들이 있다 보니 요샌 돈이 좀 많았으면 좋겠다. 나의 성미를 버릴 수 있다면 대치동 스타강사나 유투버나 방송인이나 사기꾼이나 사이비종교 교주 등이 아주 잘 어울리고 심지어 너무도 잘 할 것 같은데, 단 하나 성미가 문제이고, 애당초 그놈의 성미만 아니면 가족적으로 살아 남아 조금이나마 유산도 뜯어 편히 살 수 있지 않을까, 아니 그건 지금이라도 가능한데 왜 나는 결국 이렇게만 살 팔자일까, 내년에 한국 들어가면 일본에서 생계용 돈벌이를 잠시 멈추고 공부와 작업에만 집중하게끔 저축을 하고 싶은데 과연 그만큼 돈을 땡길 수 있을까 따위의 생각이나 하고, 잠은 안 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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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박노자의 글을 보았는데, 만일 내가 유럽에 계속 살고 중심 언어를 프랑스어나 독일어로 하고 있었더라면 어떤 문체를 갖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운 사이라면 박노자에게 문체 사이에 호흡을 주는 법을 알려주고 싶다. 그의 글은 너무 잘 만들어졌고, 문장 단위로 논리가 확고해서 지성적이라고 하기엔 나무랄 데가 없겠으나, 조금도 아름답지 못하다. 돈에 대한 고민을 하다 보니 내가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라는 망상까지 하게 된다. 좋지 않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07374.html


Posted by vasist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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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1

떠들기 2019. 11. 22. 05:30

아침 수업 끝내고 저녁 약속이 있어 걸어서 근처 스타벅스 왔다. 작업하기 전에 한국에 돌아가서 새로운 수업할 생각이 떠올라서 강의계획서를 만들어 보았다. 아직 비행기표를 사진 않았는데, 볼리비아에 갈 마음도 돈도 없을 것 같아, 그럼 2월 중순에 돌아와서 3월에 수업하면 될 것 같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 일상의 쳇바퀴를 굴리는데 충실하고 있다. 자신의 몸을 한계치로 단련해서 할복 자살했던 미시마 유키오가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번역하는 문학들

 

강의소개

문학을 통해 언어를, 언어를 통해, 번역을, 번역을 통해 문학을 알아봅니다. 성인이 되어 모국어의 한계를 넘는 것은 과연 가능한 것인지, 그러기 위해선 어떤 것들을 감각할 있어야 하는지 알아봅니다. 한국어와 프랑스어와 독일어와 스페인어를 중점으로 다루고, 라틴어와 일본어와 영어로도 텍스트를 함께 살핍니다. /소설/수필/희곡 작품을 여러 언어로 비교하면서 어떻게 읽는지, 어디까지 읽을 있는지, 어떻게 옮겨야 하는지, 어디까지 고쳐야하는지를 함께 고민합니다.

 

  • 함께 읽을 텍스트는 강사와 함께 정합니다. 수강생들의 의사에 따라 하나의 텍스트를 꾸준히 읽을 수도 있고, 여러 장르와 여러 언어의 텍스트를 번갈아가며 읽을 수도 있습니다.
  • 선택한 텍스트를 1주차 한국어/프랑스어/독일어/스페인어/영어/일본어로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보르헤스의 <타자> 선택하였다면 해당 텍스트의 스페인어 원문을 비롯하여 언어로 최소 1 이상의 번역문을 공유합니다.
  • 문학 번역을 원하는 사람은, 원하는 언어에서 한국어로 번역을 하고, 편집하고 싶은 사람은 한국어 번역본을 기준해서 가능한 다른 언어들을 참조해서 작업하고, 한국어로만 읽을 있는 사람은 한국어로 꼼꼼히 읽고, 한국어로 자신이 생각하는 문학의 언어로 고치거나 다시 씁니다. 수업시간에 문장씩 돌아가면서 읽으며 문학/번역/언어와 관련하여 평소 의식하지 못하고 넘겼던 여러 부분들을 확인합니다.
  • 함께 있는 텍스트로는 보르헤스의 <타자>, 릴케의 <두이노 비가>, 발레리의 <테스트 >, 카뮈의 <시지프스 신화>, 자베스의 <질문의 >,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훌리오 코르타사르의 <Rayuela : 팔방치기> 한국어/프랑스어/독일어/스페인어/영어/일본어로 준비돼 있습니다.
  • 강의 일정은 달라질 있습니다.

 

 

1주차 사전 작업

 

원서로 읽으면 좋다라는 환상의 거짓과 실체를 파헤쳐 봅니다. 번역문을 접하기에 앞서 기형도의 <오래된 서적>이라는 시와 에드몽 자베스의 <언어의 >이라는 시를 읽으며 해석의 다양성과 산문외의 다른 문학 장르에서 어떤 지점(,,지문,길이,문장부호,띄어쓰기) 유의하며 읽어야 되는지를 알아봅니다. 이어서 함께 읽을 텍스트를 정하고, 해당 작품을 작업하기 위해서 필요한 기초 지식(사전 참고자료 찾기) 배우고 동양어와 서양어의 근본적인 차이(타동사와 자동사/가로쓰기와 세로쓰기/라틴어와 한자/명사와 술어) 대해 알아봅니다.

 

 

2주차 문장의 형식, 그리고 관사와 명사 : 성과 수와

 

각자 작업한 텍스트를 함께 읽고 비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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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나 프랑스어 등에서 어째서 문장 5형식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품사와 문의 요소의 차이가 무엇인지, 독일어에서 격변화를 것이 있는지, 단어에 성과 수가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반대로 한국어에는 어째서 그러한 것들이 통용되지 않으며 조사가 모든 것들을 어떻게 대신하는지를 살펴봅니다.

 

 

3주차 서양어와 타동사 : 능동태/수동태/중동태/재귀대명동사/중성대명사

 

각자 작업한 텍스트를 함께 읽고 비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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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어와 동양어에서 근본적으로 동사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어째서 서양어는 타동사 중심으로 발달하는지, 그럴 경우 사전을 찾고 어휘를 익힐 동양어권 화자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문법으로 배워왔던 능동태와 수동태라는 것은 서양어에 있으며 동양어에서는 문제적인지, 그뿐만 아니라 독일어나 스페인어에서는 어째서 수동태가 동작수동태와 상태수동태로 나뉘는지, 희랍어에 말하는 중동태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지, 그것이 사라지고 퇴화와 진보를 거듭한 현대 서양어에서는 어떤 흔적들이 있는지를 알아봅니다.

 

 

4주차 시제와 시상

 

각자 작업한 텍스트를 함께 읽고 비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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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나 일본어에 정말 시제라는 것은 존재하는지,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것이 표현될 있는지, 시간이란 무엇인지, 각각의 언어에서 시간은 어떻게 담겨 있는지, 완료시제와 비완료시제의 근본적인 구분이 무엇인지, 했다와 했었다와 했었었다 따위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서양어의 다양한 시제를 동양어로는 어떻게 옮길 있는지 알아봅니다.

 

 

5주차 시제와 : 직설법, 접속법, 조건법

 

각자 작업한 텍스트를 함께 읽고 비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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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에서 would like라거나 if i were등의 이상한 표현은 있어야만 했는지, 시제와 시상을 넘어 직설법/조건법/접속법은 서양어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 그것들을 외우지 않고 이해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는지, 주체와 객체는 어떻게 문장에서 반응하는지 등을 고민해봅니다.

 

 

6주차 전치사

 

각자 작업한 텍스트를 함께 읽고 비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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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위해서라고 외운다거나, made of made from처럼 전치사를 명사 앞에 두는 전치사로 이해하지 않고서 동사/형용사/명사 뒤에 두는 후치사로 외울 경우의 한계에 대해 알아봅니다. 전치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감각할 있는지, 그것을 한국어로 어떻게 옮길 있는지 공부합니다.

 

 

 

강의 대상

 

언어의 한계를 넘어, 언어의 한계를 인지하며, 언어의 한계와 함께 문학을 읽고 고치고 옮기고 싶은 분들을 위한 강의입니다. 오직 한국어로 외국문학을 읽으려는 독자에게도, 번역문을 고치려는 편집자에게도, 문학을 번역하고 싶은 번역가에게도 도움이 있습니다. 성인이 되어 외국어로 배우고 문학을 이해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라는 편견과 과감히 맞서고 싶은 사람들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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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yuela : 팔방치기

- 훌리오 코르타사르 지음, vasistas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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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렇게 그들은 몽환적인 파리를 밤의 증표들에 이끌려, 부랑자clochard의 문장에서 태어난 이정표들을 준수하며, 검은 거리 깊숙이 빛을 밝힌 다락으로부터, 믿음이 가는 작은 광장들에서 멈칫거리며, 벤치에 입을 맞추거나 팔방치기를 구경하고자, 아이들이 비석으로 의식을 치루고 한 발로 ‘하늘’에 뛰어드는 모습을 보기 위해 걸었다. 마가는 몬테비데오에 친했던 여자아이들과 자신의 유년에 대해, 그리고 레데스마라는 사람과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올리베이라는 전혀 들을 마음이 없었지만, 그래도 조금은 관심을 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해 귀를 기울였다. 몬테비데오가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별반 다를 게 없었을뿐더러 제 딴에는 어정쩡한 헤어짐들을 공고히 다질 시간이 필요했기에(트레블러 그 놈팽이 새끼는 뭘 하고 있을까, 떠날 때부터 무슨 어처구니없는 사건에 휘말렸던 걸까? 가엾은 멍청이 게크렙텐은 어떻게 지내고 시내의 카페들은 여전할까), 올리베이라는 그녀의 말은 귓등으로 들으며 나뭇가지로 자갈에다가 그림을 그렸는데, 마가는 그동안에도 쳄페와 그라시엘라가 어째서 좋은 사람인지, 루시아나가 배에 마중 나오지 않아 얼마나 슬펐는지, 그리고 루시아나는 스놉인데 누가 됐든 그런 꼴은 봐 줄 수가 없다며 조잘댔다.

     “뭘 두고 스놉이라는 거야?” 조금은 더 마음이 동하여 올리베이라가 물었다.

     “그러니까,” 스스로도 멍청한 소리를 하려는 걸 모르진 않았는지 마가는 고개를 수그리며 말했다. “내가 여기 삼등석을 타고 왔잖아, 근데 이등석을 탔다면 루시아나도 마중을 나오지 않았겠냐는 거지.”

     “아주 난생 처음 들어보는 최고의 정의네.” 올리베이라가 말했다.

     “그리고 로카마두르도 있었어.” 마가가 말했다.

     그렇게 올리베이라는 로카마두르의 존재를 알게 되었는데, 몬테비데오에서는 그는 그냥 점잖게 카를로스 프란시스코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한다. 마가는 로마카두르의 창세기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하기에는 그닥 어울리지 않았고, 다만 낙태를 거부했다가 이제 와서는 후회중이라 말했다.

     “그래도 정말로 후회하지는 건 아니야,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하지. 이렌 아주머니가 많이 챙겨 주기도 하고, 어떻게든 노래 공부를 해야지 뭐.”

     마가는 자신이 어째서 파리에 왔는지를 자세히 알지 못했으며, 올리베이라는 그녀가 만약 행선지나 여행사 및 비자 발급에 문제가 있었다면, 지금쯤 싱가포르나 케이프타운에 있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녀에게는 오직, 자신이 몬테비오로부터 벗어났으며 자신이 점잖게 ‘삶’이라 부르는 것을 직면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중요하였다. 파리에 있어 정말로 좋은 게 뭐냐면, 그녀가 프랑스어를 제법 (피트만 보습학원에서 배운 수준보다 more) 할 줄 알았으며, 최고의 그림과 최고의 영화들, 가장 혁혁한 형태의 Kultur를 볼 기회가 많다는 것이었다. 올리베이라는 그런 모습에 뭉클해서는, (비록 왜인지는 몰라도 로카마두르 관해서는 조금 충격적이기는 했으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알던 재기 넘치는 여자들을 떠올려 보았는데, 그들의 경우 아무리 전 지구적 차원에서 형이상학적 고민을 한들 마르-델-플라타 너머로 떠나기란 불가능했다. 그런데 이 왈가닥은 심지어 아들도 품에 안고서, 3등석에 몸을 싣고, 지갑에는 땡전 한 푼도 없이 노래 공부를 한답시고 파리에 왔다. 그리고 그걸로는 부족했는지 자신에게 보는 법과 바라보는 법에 대한 가르침을 주었다. 이때의 가르침이란 그녀 스스로는 짐작도 못했을 테지만, 어슴푸레한 초록색 불빛 말곤 아무것도 없는 현관을 보려고 갑자기 걸음을 멈춘다던지, 건물 관리인 아주머니의 노여움을 피해 슬그머니 빠져나가고, 낡은 조각상이나 덩굴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넓은 안뜰에 나타나 그저 닳아빠진 둥근 자갈 타일을, 벽을 뒤덮은 푸른 이끼를, 무슨 벽시계라도 되는 양 구석에 그늘로 자리잡은 노인을 바라보며, 그리고 고양이들에게, 언제나 필연적으로 희고 검고 얼룩지고 회색빛을 띠는 야옹이 나비 miaumiau kitten kat chat cat gatto, 시간과 미지근한 포석의 주인들에게, 배를 간지럽히며 멍청함과 신비로 점철된 말을 건네는 그녀를 변치 않고 받아주는 그녀의 친구들에게, 언제나 정해진 시간에 와서 조언과 주의를 주는 식이었다. 마가와 함께 걷다 보면 올리베이라는 문득 이건 좀 이상하지 않나 싶을 때가 있었지만, 그렇다 해서 짜증을 부리지는 않았던 게, 그녀가 저지르는 일이란 대개 웨이터에게 한 소리 듣고자 맥주잔을 뒤엎는다든지 탁자 밑으로 다리를 거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마가의 특정 방식에 항상 짜증이 났던 건 사실인데, 이를테면 정해진 일을 정해진 대로 하지 않는다거나, 계산서에 앞자리 숫자들에는 눈길을 주지 않고서 대신에 Modesto 3에 늘어선 줄에 넋을 잃는다든지, 아니면 길 한복판에(검은색 르노 자동차가 2미터 앞에서 브레이크를 밟더니 머리를 내밀고는 피카르디아 억양으로 씨발씨발거린다), 거리 한가운데 서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멀리 팡테옹을 바라보고는 인도에서 바라보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식으로 그 외에도 비슷한 일을 많이 저질렀는데, 그럼에도 그는 그녀와의 시간이 행복하였다.

     페리코와 로날드하고는 이미 아는 사이였다. 마가에게 에티엔을 소개받았고, 에티엔이 그들에게 그레고로비우스를 소개해 주었다. 구사회는 생-제르맹-데-프레에서 지새던 밤들 가운데 결성되었다. 모두 얼마 안 있어 마가를 마치 피치 못할 자연적 현존으로 받아들였는데, 물론 그렇다 해도 자신들이 나누는 이야기의 대부분을 그녀에게 설명해줘야 했으며, 그녀가 포크를 절도 있게 사용할 줄 몰라 공기 중으로 감자튀김을 날리면 그것이 곧잘 다른 탁자에 앉은 사람들의 머리로 쇄도하여 사과를 하기 일쑤였고, 자각이라는 게 있냐며 그녀에게 타박을 주는 등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다. 구사회에서 마가는 매우 골칫거리의 존재로, 올리베이라는 점차 그녀가 모임의 사람들을 각자 따로 만나고 싶어하는 것을, 에티엔이나 밥스와 함께 밖에 나간다든지, 아닌 척 하면서도 정작 그들을 자기 세계로 끌어들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눈치챘는데, 어차피 다들 버스 노선이나 일상의 궤도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라 마지않는 사람들이었기에, 회원들은 틈만 나면 마가를 질타하면서도 저마다 이런 저런 방식으로 그녀에게 감사를 느꼈다. 에티엔은 우체통이나 개마냥 자기 자신을 확신하는 사람이었는데 마가가 그의 그림 앞에 서서 생각나는 대로 무언가 내던지면 낯빛을 파랗게 질려 했고, 페리코 로메로는 결국에 여자라기엔-마가가-보통이-아니다를 받아들이고야 말았다. 몇 주고 몇 달이고 (날짜를 세기란 미래에 대한 에르고ergo 없이 마냥 해복한 올리베이라에게 어려운 일이었다) 그들은 여러 사물들을 바라보며, 일어나야 할 일들을 일어나게 내버려두며, 서로 좋아하고 서로 다투며, 그리고 신문에서 다루는 기사나 가족으로의 의무를 외면하고서, 어떤 형태로든 재정적이고 도덕적인 부담을 주는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난 채로, 파리 전역을 가로지르며 걷고 또 걸었다.

     똑, 똑.

     “이제 그만 정신 좀 차리자고.” 이따금씩 올리베이라는 말했다.

     “왜 그래야 하는데.” 퐁-뇌프로부터 오는 거룻배들peniches을 바라보며 마가가 말을 이었다. “똑, 똑, 머리에 뭐 새라도 들었나봐. 똑, 똑, 그래서 항상 당신을 쪼아대는 거야, 아르헨티나 음식을 달라는 거라고. 똑, 똑.”

     “알았으니 그만해.” 올리베이라가 투덜거렸다. “나를 로카마두르로 착각하지 말라고. 이러다가는 또 식료품점이나 관리 아주머니 앞에서 글리글리코로 말하게 되고, 그럼 아주 사단이 날 거야. 저기 흑인 여자애 꽁무니를 쫓는 녀석 좀 봐.”

     “나 저 여자애 알아, 프로방스 길 커피숍에서 일해. 근데 쟤는 여자를 좋아하는데, 참 불쌍하네, 쓸데없는 일이나 하고 말야.”

     “자기한테도 수작을 부렸어?

     “당연하지. 하지만 어쨌거나 우린 친구가 됐어, 내가 루즈도 줬고 나는 책을 한 권 선물 받았는데, 작가가 누구더라, 레테, 아니... 잠깐만, 레티...”

     “그래, 그건 그렇다 치자고. 정말 같이 안 잔 거 맞아? 당신이라면 관심 가졌을 법도 한데.”

     “오라시오, 자긴 남자란 자 보긴 했고?”

     “그럼. 다 경험 아니겠어, 알잖아.”

     마가는 눈을 흘기면서 그가 자신을 놀리고 있다고, 이게 다 머릿속에서 똑 똑 거리는 새 때문에, 아르헨티나 음식을 달라는 조르는 새 때문에 뿔이 나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는 올리베이라에게 몸을 날려 마침 생-쉴피스 길을 지나가던 부부를 놀라게 하는 일이 발생했는데, 마가는 올리베이라의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웃어댔고 올리베이라는 그녀의 두 팔을 억눌렀는데, 그러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는 그들을 보면서 남편 쪽은 어렵사리 미소를 지었고, 부인은 그들의 행실에 경악을 마지않았다.

     “당신 말이 맞아,” 올리비에가 결국에 시인했다. “나도 참 구제불능이군. 결국 그렇게 잘 자 놓고서도 정신 차리자는 말이나 하고.”

둘은 어느 진열창 앞에서 걸음을 멈춰 책들의 제목을 훑었다. 마가는 책의 색깔이나 형태들을 따라가며 질문을 던졌다. 올리베이라는 플로베르의 위상에 대해, 몽테스키외가, 레몽 라디게가 어떤 사람인지, 테오필 고티에가 언제 적 사람인지를 알려주어야 했다. 마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진열창에다가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렸다. “머릿속에 새가 한 마리 있어 아르헨티나 음식을 먹고 싶대요”, 올리베이라가 되뇌며 생각에 잠겼다. “내 신세 하고는, madre mía.”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는 걸 모르겠어?” 결국 그가 말했다. “자기야, 당신은 길에서 교양을 쌓으려 하는데, 그건 가능하지가 않아. 그러려면 리더스다이제스트Reader’s Digest나 구독하라고.”

     “싫어, 그런 쓰레기를 어떻게 읽어.”

     머릿속 새 한 마리, 올리베이라는 되뇌었다. 하지만 이는 그녀를 향하는 말이 아니었고, 그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그녀의 머릿속엔 무엇이 있지? 공기든 옥수수 가루든 간에 무언가 수용능력이 떨어지는 것이리라. 그녀의 중심은 머릿속에 있지 않았다.

     “그녀는 두 눈을 감고 과녁을 명중시킨다”, 올리베이라는 생각했다. “바로 발사의 선-체계다. 하지만 체계라는 게 무엇인지를 모르기에 마가는 그저 과녁을 맞출 따름이다. 반대로 나는... 똑 똑. 뭐 이런 식으로 돌아간다.”

     마가가 선-철학에 대해 질문을 하였을 때(이는 구사회에서 가능한 일로, 모임에서는 동경의 대상이나 아득한 지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그것들은 까마득하기에 근본적인 것들로, 동전의 뒷면으로, 언제나 보는 달의 뒷면으로 여겨졌다), 그레고로비우스는 애써 그녀에게 형이상학의 기초를 설명하려 했으나, 올리베이라는 페르노를 홀짝이며 그런 광경을 보고 즐거워했다. 마가에게 무언가를 설명하려 든다는 것은 무분별한 짓이었다. 포코니에가 맞았는데, 그녀 같은 사람들에게 신비란 설명과 함께 태동되었다. 마가는 내재성과 초월성에 관한 이야기를 듣더니 예쁜 눈을 반짝이며 그레고로비우스의 형이상학을 잘라먹었다. 결국 그녀는 자기가 선을 이해했다고 납득하기에 이르렀으며, 힘이 들었는지 숨을 내리쉬었다. 그들 가운데 오직 올리베이라만이 깨달을 수 있던 사실이 있는데, 결국 그들이 변증법으로 구하고자 하는 시간 밖 거대한 테라스란, 매 순간 마가가 모습을 비추는 장소에 불과하였다.

     “멍청한 말들은 넘겨버리지 그래?” 그가 충고했다. “쓸 필요도 없는 안경을 굳이 왜 쓰려고 하는지.”

     마가는 조금 불신하는 눈치였다. 그녀는 쉬지 않고 장장 세 시간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올리베이라와 에티엔에게 끔찍하리만치 감탄하였다. 그녀는 에티엔과 올리베이라를 두르는 백묵의 구체 속으로 들어가, 어째서 문학에서는 미결정 원칙이 그토록 중요한지, 어째서 그들이 그토록 언급하고 감탄해 마지않는 모렐리가 자신의 책을 수정구로 만들어, 소멸하는 환시 속에서, 미시우주와 거시우주를 하나로 합하고자 하는지 알고 싶었다.

     “너한텐 설명이 안돼.” 에티엔이 말했다. “이건 메카노 7인데 넌 끽해야 2에 머무르고 있거든.”

     이에 마가는 슬픔에 잠겼고, 길가에서 나뭇잎을 하나 줍더니 잠깐 그것과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나뭇잎을 손바닥에 올려렸다 눕혔다 돌렸다 빗겨주더니 결국은 잎몸을 벗겨 잎맥을 드러내었는데, 그녀의 피부를 바탕으로 그것은 복잡다단한 초록색 환영이 되었다. 에티엔은 갑자기 잎을 빼앗아서는 빛에 비추어보았다. 이런 일들이 있기에 그들은 그토록 마가에게 감탄하였고 그녀에게 거칠게 굴었던 것을 조금은 부끄러워했는데, 그러면 마가는 이 때다 싶어 다시 맥주를 시키고 또 감자튀김도 좀 주문할 수 있는지를 묻곤 하였다.

 

(-71장)

Posted by vasist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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