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게 부서진 밤이 별이 되었다
도취된 나를 바라보았다
대기가 증오를 내뿜는다
아름답게 꾸민 얼굴로
음악을 동반한다.

우리는 곧 떠날 것이다

불가사의한 꿈
내 웃음의 시조
세계의 경계가 분명해졌다
자물쇠는 있으나 열쇠는 없다
공포는 있으나 눈물은 없다.

나는 나를 갖고서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그대’에게 나란 존재를 빚졌기에

하지만 내게 내일은 없고

나는 ‘그대’에게...

밤이 번민한다.



CENIZAS

La noche se astilló en estrellas
mirándome alucinada
el aire arroja odio
embellecido su rostro
con música.

Pronto nos iremos

Arcano sueño
antepasado de mi sonrisa
el mundo está demacrado
y hay candado pero no llaves
y hay pavor pero no lágrimas.

¿Qué haré conmigo?

Porque a Ti te debo lo que soy

Pero no tengo mañana

Porque a Ti te...

La noche sufre.

Posted by vasist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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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섬이 달아난다
그리고 소녀는 다시 바람을 기어올라
죽은 신탁의 새를 목도한다
이제
굴복한 불이다
이제
육신이다
이파리다
돌이다
번민의 샘을 헤맨 사물들
문명의 공포를 항해하는 사람마냥
저무는 밤을 통해 정화된다
이제
소녀가 무한의 가면을 발견한다
시의 벽을 깨부순다.


SALVACIÓN

Se fuga la isala
Y la muchacha vuelve a escalar el viento
y a descubrir la muerte del pájaro profeta
Ahora
es el fuego sometido
Ahora
es la carne
     la hoja
     la piedra
perdidos en la fuente del tormento
como el navegante en el horros de la civilización
que purifica la caída de la noche
Ahora
La muchacha halla la máscara del infinito
y rompe el muro de la poesía.

Posted by vasist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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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4월10일부터 수요윤독회(22-24시)에서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완역본을 읽습니다.
지금까지 릴케가 젊은 시인 카푸스에게 보낸 편지만이 공개되어 있었지만, 2021년에 카푸스가 릴케에게 보낸 편지들이 독일어로 출판되었고, 한국에서는 제가 번역하게 되었습니다.
원어인 독어는 물론 불어/서어/일어/영어로 번역판이 있으니, 관심 있는 언어로 함께 읽고 (원하시면 번역 후 코멘트도 받을 수 있습니다.) 싶은 분은 문의바랍니다.
참가비는 없습니다.

<본문>
하늘 보기 힘든 서울 아파트에서 자란 제게 자연은 어색하게 건물 틈을 메우는 것일 뿐, 무엇보다도 제일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었습습니다. 아스팔트의 갈라진 틈새라던지, 비온 뒤 도랑 위 폐유 위로 번지는 무지개가 차라리 심연이고 오색찬란이었습니다.

그런 제 마음을 처음으로, 그리고 오랫동안 홀로 이끌던 꽃 하나, 바로 목련입니다. 계절에 변화에도, 피고 지는 꽃에도 둔감했지만, 살던 아파트가 봄 언저리에 목련으로 가득했기에, 큼직한 꽃잎이 급식우유마냥 희었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꽃잎이 시들고, 꽃잎이 지고, 사람 발모양 같은 꽃잎이 사람 발에 짓밟히고, 꽃잎으로 뒤덮인 도로가 진창마냥 지저분해졌기에, 아 이러면 봄이 온 것이구나하고 알 수 있었습니다.

마냥 아름다운 벚꽃보다는 언제나 엉망진창으로 끝나는 목련이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무렵,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을 나왔습니다. 심적으로 가까운 적 없던 가족과 물리적으로 멀어졌고, 처음하는 수학공부에서 증명의 즐거움을 알았고, 대학 갈 마음이 없어 종일 왼손이나 연습할 겸 수학 증명과 교과서나 문제집에 실린 시를 왼손으로 베껴쓰는 동안에도, 머릿속에서는 목련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후로 목련은 계속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아니, 생각해보면 제가 따라다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달에 한 번 서울로 돌아왔을 때 거리에서 처음으로 김광석의 음반을 샀고, 가족사로 음악을 싫어하던 제가 처음으로 음반 전체를 듣고 또 들었습니다. 김광석이 부른 노래를 전부 다 외웠고, 그 중에도 제일 좋아했던 노래가 「회귀」였고, 이후 곰팡이 피는 기형도의 시를 좋아했고, 그 뒤에 실린 김현의 해제를 읽었고, 김현의 전집을 읽었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전집을 읽었고, 아무런 이해도 못했지만 『지하생활자의 수기』가 목련 같아 좋았습니다.

김광석 -  「회귀」 링크
https://youtu.be/C8pSpokZAP4?si=LOFuL8e7yBgjjxap

관심도 없던 문학을 공부해보겠다고 국문과에 들어갔고, 원만치 못한 성격임에도 문학이라는 어정쩡한 이름에 맞물려 이런저런 사람들과 술을 마셨고, 생전 가지도 않던 노래방에서 김광석의 노래만 불러댔고, 문학이론입네 철합입네 하며 어려워 보이는 것들을 읽고 괜히 유식해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지, 제게 있어 강점은 명석함보다는 무지하고 막지함임을 감지했습니다. 그때부터 어려운 책들은 멀리하고 오직 1차텍스트만을,  그중에서도 현대시를, 처음에는 한국현대시를, 이어서는 한국어로 출판되어 구할 수 있는 시라면 가리지 않고 마구 읽었고, 언제나 속시끄러웠고, 언제나 지저분했고, 언제나 비장했고, 언제나 엉망진창이었습니다.

먹고 마시는 사이 체중은 127키로까지 쪘고, 몸과 마음은 물론 계속 읽고 쓴들 도무지 단련되지 않는 저의 언어도 모두 미련하기만 했는데, 더는 현대시라는 이름으로 읽을 책들이 남지 않아 점점 이전으로 소급했고, 번역된 파울 첼란의 ‘죽음의 푸가’와 T.S. 엘리엇의 「알프레드 프루프록의 연가」를 읽으면서, 그리고 일본어와 프랑스어 사전을 뒤져가며 다무라 류이치의 ‘가라앉은 절’과 프랑시스 퐁주의 「가을의 끝」을 더듬고, 이상의 「가외가전」을 몇 번이고 다시 고쳐 읽으면서 저는 이루는 모종의 근대를 생각했습니다.

제게 있어 근대는 끝없이 짓밟히고 뒤섞이며 반복과 변주였습니다. 잡힐 듯 도망가고 도망가면 뒤쫓는 추복곡fuga이며 둔주곡fuga이었고, 목련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목련에 겨워 혼잡한 나와 나의 언어를 규정définir하기 위해서는 안에서부터가 아니라 밖에서부터, 끝fin을 분명히dé- 하는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파리와 베를린과 뮌헨에서 낯선 언어들을 익히면서도 저는 계속 목련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제 언어는 더 명료하게 뒤섞였습니다. 모국어라는 환상에서 벗어났고, 낯선 언어들만큼이나 한국어도 더 생경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회귀」를 들었고, 조연호의 「달의 목련」도 좋아했고, 목련의 학명이 프랑스 학자 마뇰Magnol의 이름을 따서 마그놀리아Magnolia라는 게, 음차어도 아닌데 목련과 가깝게 들리는 게 너무도 신기하고 즐거웠습니다.

뮌헨대에서는 바하만의 『말리나』를 읽는 수업에 참여했는데, 저는 바하만의 『말리나』를 연인이었던 첼란이 쓴 「죽음의 푸가」의 변주로, 분분히 떨어져 뒤섞이는 목련으로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때 첼란의 「죽음의 푸가」를 공들여 번역했습니다.

파울 첼란 - 「죽음의 푸가」 번역링크
https://vasistas.tistory.com/84

학교에서의 공부를 그만 두고 한국에 와서 번역을 하고 출판사를 차렸는데, 제가 생각한 문학이며 독자는 보이지 않고, 몰개성적으로 개성을 탐하는 쭉정이들의 각축전만이 난무했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더욱 혼잡하면서도 명료해질 줄 알았던 저와 제 언어는 언젠가부터 마모되어 굳어가 마찬가지로 쭉정이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작업했던 릴케의 ‘두이노 비가’ 르베르디의 ‘헤아림 너머’를 읽으면서, 이런 언어로부터 너무 멀어진 것은 아닌지, 이제 그 경지에 다시 도달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더는 천둥벌거숭이처럼 미지를 향해 자기 자신을 내던질 수 없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졌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는 다시 목련을 생각했고, ‘회귀’를 들었고, 속이 시끄러웠고, 머리가 아팠고, 사실 이때부터 공황장애 증상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 줄도 모르고 수업할 때든 언어를 가르칠 때든 번역을 할 때든 술을 마셔서 몸의 증상을 달랬습니다.

피에르 르베르디 - 「헤아림 너머」 번역링크

https://vasistas.tistory.com/87



독자public에 대한 기대도 사라졌기에 출판publishing은 때려치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마지막으로 다시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자 에콰도르로 떠났습니다. 미련한 마음에 떠나기 동네에 돋은 목련 순을 꺾어서 가방에 넣었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는 신기한 곳이었습니다. 적도 한 중간에, 그것도 고도 2000미터가 넘는 곳에 위치한 세계에서 제일 높은 수도인 이곳에는 계절이 없었습니다. 구름을 밟으며 어학교에 갔고, 계절은 순환하지 않았고, 반복도 변주도, 상실과 회귀도 없었고, 사람도 자연도 마냥 맑고 마냥 건강했습니다. 에콰도르에 있으면서 저한테는 ‘힘들게 상상된 과거로 돌아가려는 동경nostalgia’의 마음이 사라졌고, 가방에 간직한 목련은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이후 북반구와 계절이 거꾸로인 도시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넘어가 1년 반을 살면서도 남미의 웅장함에 매일 감탄했습니다. 촌스러워 보이던 아르헨티나 국기가, 그토록 맑고 파란 하늘에 한 점 걸린 구름 같이 보며 너무도 아름다웠습니다. 오래 돌고 돌아 처음 프랑스어를 배울 때부터 읽기 시작했던 프랑시스 퐁주의 ‘사물의 편’을 번역하며 계절과 봄과 목련과 상실에 대한 마음을 끝맺었습니다. 때는 9월 21일이었습니다. 그 날은 축복 받은 기억 없던 제 생일이었고, 남미에서는 봄의 시작인 날이었습니다. 저는 봄에 태어난 사람이 되었고, ‘9월 21일 봄의 첫날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라는 말로 번역을 마쳤습니다.

한국처럼 목련이 많지는 않지만 도쿄에서도 길을 걷다 보면 목련이 눈에 띌 때가 있습니다. 오늘은 자목련을 보았고, 그저 이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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