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라클레이토스

호르헤 루이 보르헤스 지음, vasistas 옮김

 

 

 

두 번째 황혼.

깊이 수면에 빠진 밤.

정화와 망각.

첫 번째 황혼.

새벽이던 아침.

아침이던 낮.

탕진한 저녁이 될 숱한 날.

두 번째 황혼.

시간의 또 다른 습관, 밤.

정화와 망각.

첫 번째 황혼…….

은밀한 새벽, 그리고 새벽녘

희랍인의 근심.

어떠한 타래여서

미래, 현재, 그리고 과거로부터 비롯하는가?

어떠한 강이어서

갠지스는 흐르는가?

어떠한 강이어서 감당할 수 없는 원천인가?

어떠한 강이어서

뭇 신화와 칼들을 휩쓸어 가는가?

잠으로도 소용없다.

꿈에 흐르고, 사막에 흐르고, 지하실에 흐른다.

강이 나를 휩쓸고, 내가 곧 강이다.

유약한 재료로, 비의의 시간으로 이루어진 나다.

내 안에 있을 시원이 아니겠는가.

나의 그늘로부터 샘솟을,

치명적이며 망상과도 같은 나날이 아니겠는가.

 

 

 

 

 

 

HERÁCLITO

 

 

El segundo crepúsculo.

La noche que se ahonda en el sueño.

La purificación y el olvido.

El primer crepúsculo.

La mañana que ha sido el alba.

El día que fue la mañana.

El día numeroso que será la tarde gastada.

El segundo crepúsculo.

Ese otro hábito del tiempo, la noche.

La purificación y el olvido.

El primer crepúsculo...

El alba sigilosa y en el alba

la zozobra del griego.

¿Qué trama es esta

del será, del es y del fue?

¿Qué río es éste

por el cual corre el Ganges?

¿Qué río es éste cuya fuente es inconcebible?

¿Qué río es éste

que arrastra mitologías y espadas?

Es inútil que duerma.

Corre en el sueño, en el desierto, en un sótano.

El río me arrebata y soy ese río.

De una materia deleznable fui hecho, de misterioso tiempo.

Acaso el manantial está en mí.

Acaso de mi sombra

surgen, fatales e ilusorios, los dí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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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yuela : 팔방치기

- 훌리오 코르타사르 지음, vasistas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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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의견들이 분분했는데 노인이 자빠졌다고, 자동차가 빨간 불인데도 안 멈춰 섰다고, 노인이 자살을 원했다고, 파리에서는 모든 게 악화일로라고, 교통이 무서우리만치 끔찍하다고, 노인은 잘못이 없다고, 노인한테 책임이 있다고, 자동차 브레이크가 잘 먹지 않는다고, 노인의 과실로 너무 주의를 게을리 했다고, 물가가 비싸져만 간다고, 파리에는 외국인이 너무 많아 교통 법규를 알아먹지도 못할뿐더러 프랑스인들의 일자리를 뺏고 있다고, 라는 식이었다.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았다. 손을 콧수염 쪽으로 가져가면서 어정쩡한 웃음을 지었다. 구급차가 와서 들것에 그를 실었고, 자동차 운전자는 계속 두 팔을 흔들어대며 경찰관과 구경꾼들한테 상황을 설명했다.
“마담 가 32번지 사람이예요.” 올리베이라를 포함해 다른 구경꾼들과 한두 마디 주고 받은 금발의 소년이 말했다. “내가 아는데 저 사람 작가예요. 책도 여러 권 썼어요.”
“범퍼가 다리를 쳤어, 뭐 자동차가 속도를 꽤나 줄이긴 했지만.”
“아니, 가슴팍을 친 거예요.” 소년이 말했다. “똥을 밟고 미끄러진 상태였거든요.”
“다리였는데.” 올리베이라가 말했다.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 어떤 아주 키 작은 남자가 말했다.
“가슴이라니까.” 소년이 말했다.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요.”
“이럴 경우엔… 가족에게 알리는 편이 좋지 않나?”
“가족이 있기나 겠어요? 작가인데.”
“아아.” 올리베이라가 말했다.
“고양이 한 말리랑 책이 엄청 많아요. 한 번은 경비아저씨가 맡아 둔 짐을 가져다주러 올라간 적이 있는데, 그때 들어라고 하더라고요. 사방이 죄다 책이던데요. 언제고 이런 사단이 일어날 줄 알았던 게, 작가란 사람들은 죄다 정신을 딴 데 두고 다니잖아요. 나라면 차에 치일 일은…”
몇 방울의 비가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주변을 포진하던 목격자들을 흩뜨려 놓았다. 올리베이라는 양털 코트를 목까지 채운 뒤, 차디찬 공기 속에 코를 들이밀고서 목적도 없이 걷기 시작했다. 그가 봤을 때, 노인은 분명 크게 다치지 않았고, 거의 평온해 보이던 그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든 것은 되레, 붉은 색 머리털을 한 구급요원이 들것에 실으면서 격려의 말이랍시고 “Allez, pépère, c’est rien, ça!”라며, 으레 아무에게나 할 말을 건넸을 때였다. ‘완벽한 소통의 결여’, 올리베이라는 생각했다. ‘꼭 우리가 혼자여서 그렇다고 볼 수는 없지. 거야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고, 문제는 그걸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거야. 혼자라는 것은 결국 홀로 어떤 영역 속에, 다른 고독들과, 혹여 가능하다면, 소통할 수 있는 어떤 영역 속에 있기를 말함이다. 하지만 어떠한 충돌인들, 그것이 교통사고든 전쟁선포든 간에, 이는 타 영역 간의 갑작스러운 교차를 야기하고, 그 경우 인간은, 비록 그가 산스크리트어나 양자물리학에서 탁월한 사람이라 한들, 들것을 들고 사고 현장으로 달려오는 요원한테는 pépère로 탈바꿈한다. 에드거 앨런 포가 손수레에 실려 나가고, 베를렌은 돌팔이 의사 손에, 네르발과 아르토는 정신과 의사와 마주한다. 키츠에게 사혈瀉血을 행하고 굶겨 죽게 만든 이태리 의사가 그의 무엇을 안단 말인가? 이들처럼 침묵을 지킨다면, 십중팔구 다른 사람들이 눈먼 승리를 얻어낼 텐데,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다른 나쁜 의도가 있던 것이 아니지만, 다만 그들로서는 수술을 받는 사람이, 결핵환자가, 다쳐 침대에 나체로 누워있는 환자가, 유리창 뒤의 다른 시간대로부터 온 것마냥, 움직이는 존재들에게 둘러싸여, 이중으로 혼자인 상태임을 알 리는 만무하니…’
어느 건물 입구에 들어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날이 저물자 상가에서는 소녀들이 무리 지어 쏟아져 나왔는데, 이제 구멍이 숭숭 뚫린 일각의 시간 동안 깔깔대고, 소리지르며 떠들고, 서로 밀쳐 대며 우쭐거릴 테고, 그런 다음에는 또 다시 스테이크를 썰거나 주간잡지를 펼쳐보게 되리라. 올리베이라는 걸음을 이어 나갔다. 사태를 비극적으로 볼 필요는 전혀 없었고, 그저 파리를, 군집한 삶의 부조리를 펼쳐본다라 하면 약간이나마 객관성을 획득할 터이다. 앞서 시인들을 이야기가 나왔기에 그는 어렵지 않게 밀고자들을 죄다 떠올릴 수 있었는데, 그들이 누군가 하냐면 바로 인간을 옆에 둔 한 인간의 고독을, 안부를 주고받는 가소로운 코미디를, 계단에서 몸이 스칠 때 내뱉는 ‘아 죄송합니다’를, 지하철에서 숙녀들에게 양보하는 좌석을, 정치와 스포츠에서의 인류애를 까발린 자들이었다. 오직 생물학적 그리고 성적 낙관주의만이, 존 던에게는 안됐지만, 몇몇 사람들에게서 자신들이 본디 하나의 섬과도 같다는 사실을 가리워줄 수 있었다. 맞닿음들, 행동으로 핏줄로 일로 침대로 운동으로 맞닿는 일들은 잎과 가지의 맞닿음으로, 나무와 나무가 교차하며 서로를 어루만져 주지만, 그럴 때에도 그 근간은 이러한 행위를 업신여기며 일치될 수 없는 평행을 드높여만 간다. ‘심층에서도 표층에서와 마찬가지로 존재할 수도 있겠지,’ 올리베이라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려면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만 해. 그런데 다른 방식으로 산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아마도 부조리하게 삶으로써 부조리를 끝장내 버리고, 너무도 폭력적으로 저 자신에게 몸을 날린 나머지 결국엔 다른 사람의 두 팔 안에 안겨 들어가는 것으로 끝난다는 말일지도. 그래 어쩌면 사랑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우리로서는 otherness가 한 여자가 옆에 있는 동안 계속해서 함께 있을뿐더러, 그로서만 그녀와 관계할 수 있다. 심층에 otherness란 없고, 끽해야 상냥한 togetherness가 있을 따름이다. 그것도 감지덕지이지’… 사랑, 존재론적이게 만드는, 이곳에 있게 만드는 의식. 그래서인지 진작 처음부터 떠올렸으면 좋았을 생각이 이제야 머리에 떠오른다: 자신을 소유하지 않고서는 타자성에 대한 소유도 불가능하다는 생각인데, 그런데 대체 누가 진정으로 자신을 소유했단 말인가? 누가 다시 저 자신으로부터, 온전한 혼자로부터 돌아왔단 말인가, 즉 자신과의 동반은 나 몰라라 하고서, 영화관이든 사창가든 친구들 집이든 진이 빠지게 만드는 직장이든 결혼이든 몸을 내맡겨서는 하다 못해 타인들-속에서-홀로 있으려 하였단 말인가? 이렇게 역설적으로, 혼자임의 극치에 이끌려 군집의 극치로, 낯선 이와의 동반이라는 커다란 착각으로, 거울과 메아리로 가득한 방 속에서 혼자만인 인간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그나 다른 많은 사람들이 저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혹은 저 자신을 거부한다면서도 자기 자신을 가까이서 인식하는 것처럼) 인간은 최악의 역설에, 즉 타자성의 경계에 있을 뿐, 그 경계를 넘어서지는 못하리라는 역설에 빠지고야 만다. 진정한 타자성, 그러니까 섬세하고도 복잡다단한 맞다음들로, 세계와의 경이로운 절충으로 이루어진 타자성은 단 하나의 항項으로부터 달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며, 내뻗은 손에 밖에서부터, 타인으로부터의 다른 한 손이 화답해야만 했다.

 

(-6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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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번째 수직의 시』에서

22
연기가 우리의 영상이다.
우리는 연소되어 사라지는 무언가의 잔여물이다
가까스로 보이는 점진적 소멸이다
시간이라는 가정 속에서 해체되는, 
다른 어떤 때에 형성되었을지도 모르는,
지켜지지 않은 약속이다.

타오르는 나선무늬에도,
여기 잊혀진 섬의
혹독한 겨울은 누그러지지 않으니,
언젠가 섬 또한 연기로 변해야 하리라.

우리 어찌 영상에 매료되지 않겠는가,
그 발전적 실패에,
그 비실체적 실체에,
그 낯모르는 열기에,
수은이 칠해지지 않은
그 유일무이한 가능의 거울에.

혹여 우리 이 광기어린 무질서로부터 벗어날 경우,
연기는 다시금 또 다른 불을 지필 것이다.

허나 그때 더는 연기가 남아있지는 않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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