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타사르 작업할 때 스페인어, 프랑스어, 독어, 일본어, 영어 순으로 참조했는데, 일어본과 독어본이 회사에 있어 최근에는 참조를 안 하고 있다. 목요일에 회사에 수업이 있는데, 낮이어서 그런지 무거운 책 들고 올 의욕이 없다.
잠을 또 못 잤다. 내게도 불면증이라는 게 생길 줄 몰랐다. 거의 아무도 보지 않는데 아무것고 읽지 않고 아무것도 듣지 않는데 여전히 속시끄럽다. 머리가 쉽게 뜨거워진다. 모든 걸 다 버리고 일본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가서는 그만 얽매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할 거 같아 불안하다.
도용 및 무단 배포를 금지. 편집 전 원고의 일시적 공개로 이후 정식 출간된 작품을 사서 읽기를 권장. |
Rayuela : 팔방치기
- 훌리오 코르타사르 지음, vasistas 옮김
###
13
연기로 둘러싸인 로널드는 남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거의 신경도 쓰지 않고 차례차례 음반을 넘겨보았고, 밥스도 가끔은 바닥에서 일어나 해묵은 78회전반 더미 속을 뒤적이다가 개중 대여섯 장을 로널드의 손닿는 쪽 탁자에다가 내려두는데, 그러면 로널드는 몸을 기울여 밥스를 쓰다듬어 주고, 밥스는 또 배배 몸을 꼬아가며 웃다 그의 무릎에 앉지만, 이 역시 잠깐으로, 로널드는 조용히 귀를 기울여 Don’t play me cheap을 듣기를 바랐다.
새치모의 노래에 Don’t you play me cheap 1
Because I look so meek
밥스는 로널드의 무릎에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새치모의 노래에 달아오르니, 너무도 속된 주제에 문란해지지 않고선 배길 수 없어 로널드 또한 Yellow Dog Blues를 부를 때의 새치모라면 모를까, 그녀의 목덜미로 내뱉는 숨이 보드카와 자우어크라우트에 뒤섞여 무서우리만치 그녀를 반짝이게 함에도 동조하지 않으래야 않을 수 없었다. 높디높은 그녀의 시점에서부터 일종의 감탄을 금치 못할 피라미드가 연기와 음악과 보드카와 자우어크라우트와 로널드의 손으로 번져 활개를 쳤다 소급하기를 반복하고, 그에 응한 밥스의 눈길이 반쯤 감긴 눈꺼풀 사이를 지나 바닥에 앉아 있는 올리베이라에게로 떨어지는데, 에스키모 모포로 장식된 벽에 어깨를 기댄 채 담배를 피는 그는, 이미 정신이 나갈 정도로 취한 상태로, 원망스러우면서도 씁쓸함이 담긴 남미인의 얼굴에, 가끔씩 휘파람과 휘파람 사이로 2 미소 짓는 입이며,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 밥스가 원했던 올리베이라의 입술이 미약하게나마 굴곡을 그리는 가운데, 얼굴 그 외 나머지 부분은 죄다 씻겨나가 부재하는 듯했다. 아무리 재즈를 좋아한다 하여도 올리베이라는 로널드처럼 재즈라는 놀이에 빠져들지 못하리니, 왜인즉 그에게 재즈란 좋거나 나쁜 것, 핫하거나 쿨한 것, 희거나 검은 것, 고전적이거나 현대적인 것, 시카고나 뉴올리언스인 것이지, 결코 재즈 그 자체일 수도, 결코 지금과 같이 새치모며 로널드며 밥스일 수 없었고, Baby don’t you play me cheap because I look so meek, 이어서 트럼펫이 활활 타오른 다음, 노란색 남근이 공기를 가르고 펌프질을 만끽하더니 이제 끝을 향해 세 번에 걸쳐 음을 올리니, 이는 곧 순금의 최면인 바, 바야흐로 완벽한 중단 속에서 세상의 모든 스윙이 참을 수 없는 순간을 약동하고, 그리하여 결국엔 성 3性스러운 밤의 로켓이라도 된다는 듯이 미끄러짐과 낙하로 최고음역의 사정이 이루어지니, 로널드의 손은 밥스의 목을 애무했고 계속해서 음반이 돌아가는 가운데 바늘이 틱틱 튀겼으며, 그리고 모든 진정한 음악에 자리하는 침묵이 천천히 사면의 벽들로부터 떨어지고 침대 아래로부터 빠져나와서는 입술인지 고치인지 모를 모양으로 벌어졌다.
“장난 아닌데Ça alors” 에티엔이 말했다.
“ 그렇지, 암스트롱의 위대한 시기라고.” 로널드는 밥스가 고른 음반더미를 살피며 말했다. “이른바 피카소의 거장주의 시기 같은 거야. 지금 와서는 둘 다 돼지가 되어버렸지만 말이야. 한번 의사들이 회춘약을 발명했다 생각해 보라고... 우리를 20년은 더 계속해서 엿먹이고야 말걸, 두고 봐.”
“우린 아니지” 에티엔이 말했다. “우린 이미 제때 둘에게 한 방 쐈으니까, 아 그리고 제발 때가 되면 나도 좀 쏴줬으면 해.”
“제때라니, 짜식 요구랄 것도 없네” 하품하며 올리베이라 말했다. “하지만 분명 우린 그들에게 이미 은총의 일격을 먹였지. 이를테면 총알 대신에 장미로 말이야. 남은 것이라고는 습관과 먹지뿐이라고, 암스트롱이 지금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처음 왔다 쳐봐, 뭔가 저세상의 걸 듣는다 믿는 수천의 쪼다들이 상상이나 가는지, 그러면 새치모는 노회한 복서보다도 더 교활하게 요리저리 피해 다니며, 지쳐 돈줄이 되어서는, 뭐하자는 짓인지 아무 생각도 않고 일상을 반복하고, 그럼 그 와중에도 20년 전 Mahogany Hall Stomp를 틀어주면 귀를 막던 내 경애하는 친구들이 이제 와가지고 얼만지도 모를 돈 부어가며 1등석에 앉아서 재탕이나 들으려 하겠지. 물론 우리나라도 순전 재탕이야, 아무리 좋아해도 인정할 건 해야지.” 4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페리코가 사전 뒤에서 말했다. “네가 이곳에 온 것도 틀에 박힌 일로, 감정 교육을 받겠답시고 파리에 오는 네 동포들과 다를 게 없어. 적어도 씨발 스페인에서는 사창가나 투우장에서 배우는 건데 말야.”
“파르도 바산의 백작부인에게도 그렇고” 올리베이라가 다시 하품을 하며 말했다. “그밖엔 임마, 네 말이 거의 맞아. 내가 정말 원래대로라면 지금쯤 트레블러랑 트루코 5라도 치고 있어야 하는데. 사실 넌 그게 누군지도 모르겠지. 넌 아무것도 아는 게 없으니까. 그러니 말해 뭐해?” 6
(-115장)
- 미국의 재즈음악가 루이 암스트롱(1901-1971)의 별명. 커다란 입을 뜻하는 Satchel Mouth의 줄임말. [본문으로]
- 독일과 주변 국가에서 먹는 절인 양배추. [본문으로]
- ‘탱고의 신사’로 유명했던 카를로스 디사를리(1903-1960)가 작곡한 ‘휘파람과 휘파람 사이entre pitada y pitada’라는 동명의 노래가 있다. [본문으로]
- 은총의 일격el tiro de gracia는 사람이나 동물이 회복불가능한 상태일 때 상대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기 위해 가하는 최후의 일격을 말한다. [본문으로]
- 파르도 바산(1851-1921) : 스페인 작가. [본문으로]
- 아르헨티나식 카드 게임. [본문으로]